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도 없고,
느낌·생각·의지·식도 없다.
반야심경의 전반부에서 우리는 색(色)이 공하고,
受想行識(수상행식) — 즉 감정과 생각, 의지와 식별마저 공하다는 통찰을 배웠습니다.
이제 경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합니다.
공 안에는 애초에 오온(五蘊) 자체가 없다.
형상(色)도 없고, 느낌(受)도 없으며, 생각(想), 의지(行), 식별(識)도 없다.
말하자면 비어 있기에, 처음부터 무엇이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없다'는 것은 절대적 무(無)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성(自性), 즉 고정된 본질로서의 존재가 없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는 반야심경 전체 사유의 정점에 해당하는 가르침입니다.
단지 형상이나 마음작용이 ‘공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공성(空性)을 바르게 보게 되면
그 가운데에서 ‘존재한다’고 할 만한
그 어떤 실체도 발견할 수 없다는 깊은 통찰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있음'과 '없음'의 틀 안에서 사고합니다.
그러나 반야의 지혜는 이 이분법마저 넘어섭니다.
있음이라 하면 본래부터 존재하는 자성을 가리키게 되고,
없음이라 하면 완전한 허무를 뜻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이 말하는 '공'은 그 어느 쪽에도 머물지 않는 자유로운 지혜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초기경전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설해졌습니다.
《잡아함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비구들이여, 색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이니라.
수상행식(受想行識)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그것들을 내 것이라 집착하지 말라."
색과 오온 전체가 무상(無常)하고, 고(苦)이며, 무아(無我)라는 통찰을 통해
그것들이 본래부터 고정된 자성을 갖지 않음을 보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초기불교 수행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반야심경에서는 굳이
무색 무수상핵식 '無色 無受想行識' — '없다'고까지 말했을까요?
그것은 우리 인식의 집착하는 성향을 단호하게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색과 수상행식을 '있다'라고 믿고, 그
것에 의지해 자아를 형성하고 세계를 해석합니다.
그러나 공의 통찰에 이르면, 그 모든 기반이 허상임을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형상도, 감정도, 생각도
본래부터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흐름에 불과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상응부》에서는 부처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색은 생하고 멸한다. 수·상·행·식 또한 생하고 멸한다.
생멸을 보는 이는 생멸에 속박되지 않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멸 자체를 보는 지혜입니다.
생하고 멸하는 형상과 마음작용을 그대로 보되 거기에 속박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공 안에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다’는 반야심경의 정신과 통하는 가르침입니다.
《금강경》은 이를 더욱 철저히 밀어붙입니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모든 형상과 마음작용은 결국 형상이 아닌 것, 본질 없는 흐름임을 보는 눈이 곧 지혜의 눈입니다.
그렇게 보면 '공 가운데에 색이 없다'는 말은
실체로서의 색을 찾으려는 집착을 놓아버리라는 뜻입니다.
'마음작용이 없다'는 것도 그 작용을 고정된 나의 일부라 착각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고려시대의 지눌국사도 《권수정혜결사문》에서 비슷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마음은 본래 생멸이 없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법은 그림자와 같으니라."
그림자처럼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작용에 얽매이지 않고,
그 바탕에 있는 고요한 공성을 관조하라는 것입니다.
중국 선종에서도 이 구절은 중요한 수행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육조 혜능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설했습니다.
본래 어떤 실체도 없으니, 붙잡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습니다.
일본 선종에서는 도겐 선사가 좌선 중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이 본래 무자성임을 보고 흘려보내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상과 마음작용이 ‘없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공 가운데에서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음을 체험적으로 아는 길입니다.
이러한 깊은 통찰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감정과 생각, 의지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종종 그것에 휘둘리며 반응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렇게 속삭여 보십시오.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공 안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다.
지금 떠오른 이 생각도 감정도,
본래 고정된 것이 아니며,
잡으려 할수록 흘러가고, 놓아두면 고요해지는 흐름일 뿐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관조하면,
우리는 점점 고정된 자아라는 환상을 풀고,
형상과 마음작용의 실체 없음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이 여기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바라보라.
색도 없고, 마음작용도 없음을 보고 거기서 참된 자유를 얻으라.
그리하여 우리의 삶 또한
형상과 마음의 그물에서 벗어나
더 넓고 깊은 지혜의 바다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는 "無眼耳鼻舌身意" —
공 가운데에 여섯 감각기관조차 없음을 비추는 가르침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마음의 고요한 흐름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