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경제학/이준구]와 집값에 관한 토론-
대학 동기들 네다섯 명과 집값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참고로 나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88년도에 입학했다. 대학 동기 중에는 국내 유수의 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있는 경제학 박사도 있고, 30년 가까이 사업을 해온 사업의 달인,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오랜 세월 능력을 발휘하던 능력자 샐러리맨도 있다. 물론 세상 이런저런 소식에 늘 귀를 쫑긋 세우는 나도 있고.
토론의 시작은, 머리가 좋아 평소에도 늘 판단이 빠르고 결단력이 있어 추진력도 겸비했으며,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친구 L이,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님의 글을 단톡 방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단톡 방은 대학 동기 전체 단톡 방은 아니고, 자주 술을 마시며 어울리는 술고래 몇 명이 ‘술 약속 번개’를 위해서 만든 방이다 )
나는 대학 시절 경제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경제의 개념을 전혀 모른 채, 오직 명석한 두뇌와 성실함만으로, 전과목 A+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 2학년 때,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이 쓰신 [미시 경제학]을 읽고, 경제에 대한 눈이 갑자기 트이고, 경제학이란 학문이, 표선면의 길냥이 ‘코코’ 만큼이나 사랑스러워진 케이스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경제학도들은 서울대 정윤찬 선생님의 [거시경제학] 그리고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의 [미시경제학]으로 경제학에 입문했었다)
대학 2학년 겨울 방학에, 나 역시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통독하고는 경제학이 이토록 아름다운 학문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경탄을 하고 있었다. 그 이전 까지만 해도 나의 경제학에 대한 인식은, (국내 최고의 경영대학을 2년 동안이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돈 세는 법’이나 알려주는 싸구려 학문이라며 무시했었다.
대학 2학년 겨울까지만 해도 나는, 학문의 최고봉은 역시, 인간이 ‘세상을 보는 세계관을 제시하는’ 철학과, ‘물질의 세계에 관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학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다른 모든 학문들은 철학과 물리학에 종속되는 하위 학문일 뿐이야~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에 집착했었고, 철학과 물리학 관련 서적 외에는, 전공서적도 별로 읽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까지, 대부분의 교양수업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막상 경영대학의 전공과목에서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성적표 앞에 ‘싸구려 속물 정신’과 타협을 하고, 남들이 다 목매는 ‘싸구려 학문인 경제학’ 공부를 2학년 겨울방학에 시작했다.
겨울방학 2달이 지나고 나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철학과 물리학 외에 타 학문은 ‘다~~ 저급한 속세의 학문’이라며 무시하던 ‘무지’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경제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살아온 세상에 관한 좀 더 많은 지식이 필요했기에,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세계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경제학에 관한 시각이 한번 제대로 잡히자, 이후 전공 공부는 쉬워졌고, 덕분에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전공 수업은 한 학기에 몇 번 출석하지도 못했지만 독학으로도 평균 3.5점이 넘는 학점을 받고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에서, 출석 체크를 하지 않은 걸로 안다)
얘기가 내 자랑으로 샜는데, (제주에서 혼자 사는 홀아비이다 보니, 누구한테 하소연할 곳도, 자랑할 곳도 딱히 없어서, 수시로 이렇게 자뻑에 빠지는 걸 용서해주시라~~~) 다시 집값 얘기로 돌아와서, [미시경제학]이란 책으로 맺은 인연 때문에, 존경해마지 않는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이 쓰신, 우리나라 집값의 전망에 관한 글의 핵심은 이렇다.
”...........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주택시장, 특히 강남을 위시한 수도권의 주택시장에서 거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주택 가격 폭등 현상이, 투기세력의 공격(speculative attack)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주택시장의 펀더멘탈이 급격히 변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가격 급등이 일어났다고 믿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투기세력의 공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부가 갖가지 투기 억제 장치를 도입하고 있지만, 설사 그런 장치가 없다 하더라도 투기세력의 공격은 어느 단계에 가서는 동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주택 가격이 지금까지 급격히 오른 만큼,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택에 “영끌 투자”를 한다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나는 지금이 매우 조심스러운 시점이고, 따라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주택 구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택 가격이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를수록, 조바심이 더 커지겠지만, 이와 동시에 상투를 잡을 가능성도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
이준구 교수님의 의견에 대해서, 친구 L이 즉각 반박 글을 올렸다.
”1. 거품이라고 하기에는 서울 강남 등의 집값이, IMF 이후 20년이 넘게 상승해 왔습니다. 한국 시장처럼, 외부 변수에 취약한 나라에서, 20년이 넘는 거품이 형성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니 지금 주택시장은 거품이 아닙니다.
2. 투기세력의 공격이 없어지면, 집값이 하락할 거라고 보기에는, 강남 목동 여의도 등에 장기로 살고 있는 실수요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분들이 호가가 떨어진다고, 집을 싸게 내놓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금융위기 때도, 코로나 위기 때도, 버텨낼 수 있었는데, 그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만큼의 자금 여력이 된다는 걸 말합니다.
3. 주식시장에서도 지난 20년간, 삼성전자 등 우수 기업만 주가가 10배~ 100배 올랐습니다. 주택은 기업처럼 영업이익이 증가하지 않으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서울 알짜배기 땅에 있는 주택은, 주거의 편의성 / 부자동네라는 자부심 / 부자들이 값을 올려줄 거라는 기대심리 / 학군 / 교통 / 문화시설 등이, 해당 지역 아파트의 영업이익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 영업이익이 삼성전자와 LG화학의 영업이익이 오르듯 올라간 거라고 봅니다.
이상의 논거 때문에, 저는 한국의 강남 분당 등 부자 동네의 주택값은 떨어지기 힘들 거라고 봅니다. 참고로 저는 무주택자입니다. 부동산 투기 세력 아닙니다.
그러자 다시 경제학 박사 K가 자신의 의견을 올렸다.
“..... 내가 보기에는 모든 자산 가격이 다 오르고 있는데, 이건 결국 인플레이션 현상이고, 그 기저에는 돈을 많이 풀어서 생긴 현상임. 금값도 같은 이치. 금은 심지어 이자도 없고, 주거나 서비스도 주지 않는 자산임. 결론은 전 세계 자산 가격은 기존 패러다임으로 보면 모두 버블인데, 문제는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세상이 왔다 이거야. 명목화폐를 중앙은행이 더 이상 신뢰를 주지 못하는 시점이 오면, 강남 집뿐 아니라, 모든 자산 가격이 붕괴되는데.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냐?....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음...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풀려도 너무 많이 풀렸는데...>
그러자 다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게다가 출중한 주식 재테크 실력으로 동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친구 J가, 이런 글을 올렸다.
”......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 25년 동안 무주택으로 살던 지인들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작게는 10억 크게는 25억에, 집을 사고 있더군요. 오늘 점심에는 아주 앳된 여학생들이, 주식 어플에서, 종목을 조회하며 나름의 돈 버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요...
그러니 적당한 때가 온 것 같네요. 저라면 집 안에 있는 금과 여유의 집과 오를 만큼 오른 LG화학주 죄다 팝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언제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행동하세요~ 셀!
주식은 3천 터치 후 엄청난 속도로 하방 합니다. 2600~2700이면 던지시고, 애들 안 낳는 청년들이 40대가 되는 5년 후면, 집값은 똥값 되고요. 50년생이 80살이 넘어가는 2030년에나 다시 오릅니다. 내년부터 10년간은 죽~ 내립니다..... “
나는....? 친구들의 글을 잘 읽었다.
‘역시 내가 똑똑한 친구들을 뒀군’ 생각하면서. 전망은 각기 달라도 나름의 주장을 펼치는 논리가 나쁘지 않아. 학점을 줘 볼까?
K는 좀 신중한 입장이긴 하나, 인플레이션에 주목한 점을 칭찬해서, A-/ L은 기존의 강남 불패론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창의성이 없어, B- / J는 재테크 도사답게 실물 경제 예측에서 아주 예리하군 A+ /
성적을 대 매기고 나니, 내가 교수님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바로 기분이 다시 우울해졌다. 사람들이 살기 좋은 사회란, 삶의 기본 터전인 의/식/주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적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집값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끝없이 오르는 바벨탑에 오르기 위해서, 집이 있는 사람들은 바벨탑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해서.
나라님!!
2020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집값을 어찌하오리까?~~~
<16세기 플랑드르 미술(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화풍)의 대표적 화가인 브레헬이 그린 바벨탑.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