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박유희 교수 / 책과 함께)-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다. 세계 최대의 기록문화유산인 [승정원일기]는, 소실된 절반 정도를 뺀 나머지, 인조 1년(1623) 3월부터 순종 융희 4년(1910) 8월까지, 288년 치만 하더라도, 3,245 책, 약 2억 3천만 자나 되는 대기록이다.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를 모은, 25사(3,386 책, 약 4천만 자)와 견줘도, [승정원일기]가 5.8배나 더 방대한 분량이다.
조선이 위대한 나라일 수 있었던 건, 문화, 학술, 풍습, 역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엄청난 양의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승정원일기]는, 현대 기상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는데, [일기]에는, 매일 서울 궁궐에서 관측한, 288년 치의 날씨가 기록되어 있는,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승정원일기]의 첫머리에는 항상,
맑음. 묘시(오전 5~7시)부터 진시(오전 7~9시)까지는 안개가 끼었다(晴. 卯時辰時有霧氣. 현종 7년 10월 20일)
눈이 내리기도 하고 맑기도 했다(乍雪乍晴. 같은 해 11월 18일)
아침에는 맑다가 저녁에는 비가 왔다(朝晴暮雨. 인조 13년 9월 14일)
처럼 정확하게 매일의 날씨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의 기록문화유산, [승정원일기]. 승정원은 조선의 3대 임금 태종 때 만들어진 왕의 비서실이다. 승정원에서는 왕을 보좌하면서 날마다 일기를 썼는데, [승정원일기]에는 왕의 하루 일과와 지시 내용, 각 부처에서 보고한 내용, 신하들이 올린 상소문 등이 실려 있다. 국보 303호.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기록하는 인류의 행위’는, 당대에는 미처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더라고, 후대에 걸쳐 그 가치가 몇 배, 몇백 배로 증대한다. 나는 한때 영화학도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눈이 ‘적록색약’이라는, 유전적인 결함을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영화에 관한 관심은 지대해서, 영화와 관련된 서적을 자주 탐독하는 편이었다. 특히 한국 영화의 기록과 보존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봐온, ‘한국영화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저작을 최근에 읽을 수 있었다.
한국 영상자료원에 한국영화 필름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양이 너무 방대하므로, 누군가는 한국 영화와 관련해서 분류 및 체계화, 그리고 일정한 시각을 제시하는 작업을 해놔야 한다. 그래야 영화에 입문하려는 영화학도부터 관련 종사자, 그리고 일반 애호인까지, ‘한국영화’에 대한 용이한 접근은 물론, 이해와 폭을 넓힐 수 있다.
고려대학교 박유희 교수의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는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이상 다섯 가지 주제로 한국영화사를 분류, 체계화하고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박 교수만의 시각을 제시한, 한국영화를 위한 크나큰 축복 같은 저작물이다.
1부 [가족]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는, 한국영화를 다시, 어머니/아버지/오빠/누이 이렇게 4가지 소주제로 나눠, 지나온 한국인의 삶과, 한국 사회를 투영한 우리 영화에 대한 분석 및 의미 평가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서문에서,
‘어머니‘ 하면 뇌리를 스쳐가는 교수들, 마른 몸피에 콧수염을 기르고 유카타를 입은 채 굽실대는 ’ 나카무라 상‘, 북과 나팔을 불며 쥐 떼처럼 몰려드는 ’종 공군‘,
붉은 무복에 빗갓을 쓰고 작두 타는 무당, 남성 마초처럼 괄괄하게 구는 유능한 여성 검사...... 이러한 이미지가 구성되는 과정에는, 기억과 상상이 함께 관여한다.
그리고 대중문화 시대에 그 기억과 상상은,
대중문화에 재현된 이미지에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언제 굿판을 보았으며, 식민지 시기 일본이나, 한국전쟁 당시의 중공군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여성 검사를 만나본 일이 있는지.
만일 우리가 실제로 그들을 본다 하더라도,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와는 다를 수 있다. 대중의 머릿속에 잡은 영화 속 이미지는, 사실이나 실재와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재현되는 이미지가 변천하면서,
대중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인식 또한 변화한다
라며, 대중문화 특히 영화 속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의 머리와 마음속에 ‘표상’(表象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된 주제들을, 영화의 명장면과 배우들의 이미지, 감독의 의도, 영화를 받아들였던 당시 대중의 반응을 통해,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기록을 통해 ‘진정한 한국영화사’를 다시 써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1부 가족. 1장. 어머니에 나오는, 여배우 최은희에 대한 글을 살펴보자.
최은희의 모성 표상은, 그녀가 20대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아들을 잃고, 불공을 드리러 온 미망인(최은희)은,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동승 도성(유민)이 마음에 그리던
이상적인 어머니의 현신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자애롭다. 그리고 수난을 여인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그로 인한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태도와 처연한 분위기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빛나게 만들고, 그녀는 노스탤지어와 같은 어머니 상으로 남는다.
그 이후 최은희의 모성 표상이 대중에서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동심초>(신상옥 1959)에서 맡은 ’ 아름다운 미망인‘ 이미지를 통해서였다.
책에서는 이후, 전설의 여배우 최은희가, ‘어머니’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 시작부터, 발전과정,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한국의 대중의 반응에 대해, 꼼꼼한 고찰을 이어간다.
<1950~60년대 한국 최고의 여성 영화배우였던 최은희. 최은희는 1947년에 [새로운 맹서]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1970년대까지 12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사진 : [상록수](1961, 신상옥 감독) ]
또 다른 주제 [첫사랑] 편을 보면,
현재 한국의 중, 장년층에게 ‘첫사랑’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와 현제명의 가곡 [그 집 앞] 일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시골 마을에서, 소년과 소녀가 만나고, 소나기를 계기로 애틋한 감정을 느끼지만, 소녀의 죽음으로 그 감정은 아픈 추억이 된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 소설은, 알퐁스 도데의 [별]과 함께
순수하고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과거로서의
‘첫사랑’ 표상을 대중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그 집 앞]도 마찬가지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 외로이 이 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려 / 불빛에 빗줄기만 새겨 갑니다 /
1절은 수줍은 사랑을 하던 과거를, 2절은 세월이 지나 화자가 중, 장년이 되어,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화자는 수줍은 사랑을 했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집 앞을 지날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이 떠오른다.
[소나기]의 소년이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았다면, 모두가 떠난
윤 초시의 집 앞에서 [그 집 앞]의 화자처럼 서성거리다 홀로 돌아섰을 것이다.
그때 스산한 가을비까지 내린다면, 그는 소녀와 맞았던 한여름 소나기를
떠올리며 ‘불빛에 빗줄기만 세며’ 갔을지 모른다.
첫사랑은 언제나 과거형으로 추억으로 환기될 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더 그리운 대상이기도 하다.
라며, 첫사랑에 관한 한국 사회의 인식과 이를 반영한 영화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첫사랑에 관한 다른 시각을 드러낸 다양한 영화들을 고찰한다.
또한, 4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건축학 개론] 속 첫사랑과 관련해선,
첫사랑은 유일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신화는 깨지고, 그동안의 첫사랑 영화에서
결코 순치될 수 없었던,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은 무리 없이 순치된다.
이는 <건축한 개론>이 기존의 첫사랑 영화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지점이다.
라며, 신선한 시각을 제시하기도 한다.
<첫사랑의 아련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며, 400만 관객을 동원한 [건축학 개론].(2012년, 이용주 감독)>
이처럼,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는,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영화 100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두루 관찰하며, ‘한국 영화 속 이미지의 변천 과정에 관한 고찰’이라는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국, 내외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이후, 한국 영화계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많이 위축된 상태다. 우리 영화계를 ‘기생충’처럼 괴롭히는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서, 영화 제작과 관람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한국 영화를 다룬 뛰어난 기록을 일독하며, 내공을 쌓아놓으면, 코로나를 물리친 이후 우리 영화계가 더 풍성한 결실을 맺으리라 믿는다.
<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한국 영화사를 기록한, 박유희 고려대 교수의 역저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