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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Oct 03. 2020

지구 상 최고의 여행기, 연암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열하일기 첫걸음 / 박수밀 교수, 돌베개 >-

내게 조선 후기 실학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연암(燕巖), 박지원’이다. 연암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의 경제를 살찌워야 함을 강조한 실학자이자, 뛰어난 문필가였다. 지금으로 치면, 헤밍웨이 같은 위대한 작가인 동시에, 「고용 ·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으로, 경제학의 흐름을 바꿔버린,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이기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연암의 열하일기가 정조시대 조선 사대부들에게 준 혁명적인 충격을 감안하면, 현대 소설 작법의 거대한 흐름을 바꾼 프란츠 카프카나 제임스 조이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암의 작품들은 카프카의 실존주의나 조이스의 모더니즘보다는, 헤밍웨이처럼 리얼리즘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피터팬 PD가 연암을 사모하게 된 첫 시작은,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조선 후기 양반들을 비판한 사회 풍자소설 [호질]을 읽고 나서다. 이후 연암의 문학 작품을 꾸준히 읽어왔는데, 막상 그의 작품 중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열하일기]는, 매번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었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호질(虎叱:호랑이가 꾸짖음). [열하일기()] 중,

관내 정사(關內程史)에 실린 작품이다. 연암의 소설 중에서도 양반계급의 위선을 비판한 작품으로, 

[허생전(許生傳)]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 


연암 박지원은 자유분방한 한문(漢文)체로, 조선 후기에 새로운 글쓰기의 전형을 개척한, '천재 문인, 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한문을 연구해온 학자들에게는 연암의 문체가, ‘경이로운 신세계로의 초대’ 였음이 분명하겠으나, 나와 같은 한글세대에게는, [열하일기]를 한글로 번역한 작품 중에서, 쏙쏙 쉽게 읽히는 책을 구하기 어려웠다. 물론 한국 고전 연구가 고미숙 선생이, 대중적인 번역에 힘쓰신 [열하일기] 번역본이 몇 있으나, 나의 재능이 부족하여 고 선생님의 책에서, 연암의 향기와 우언(寓言)의 깊은 맛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전부터, 연암 연구자들이 열하일기를 독파하려는 초심자에게, 충실한 가이드 역할을 해줄 친절한 책을 써줬으면 하고 바라 왔는데, 올여름 드디어 내가 바라고 바라던 책을 찾게 되었다. 그 책은 바로 도서출판 돌베개에서 새로 나온, [열하일기 첫걸음/ 박수밀 한양대 교수 저(著)]이다.     

 

돌베개 출판사는, 오랜 세월 한국 고전과 한국학에 관한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만큼, 우리 선조들의 작품을 한글로 번역, 출간하는데 노력해왔고, 특히 연암과 관련해서는 국내 타 출판사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암 전문 출판사라 할 만큼, 저서의 양과 질에서 큰 성과를 이뤄내 왔다. 출판사를 신뢰할 수 있었기에, 이번 책 [열하일기 첫걸음]을 통해, 나도 연암의 작품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열하일기]의 깊은 맛을 꼭 체험해보고 싶었다.   

   

저자인 한양대 박수밀 교수는 연암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25년 동안 연암을 전공해온 연암 전문가이다. 

그래서인지 박교수는 서문에서      


“... 열하일기를 사상의 깊이로 보자면, 문명과 인간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동아시아 비전까지 도달한 심오한 사상서이고, 그 문제의식으로 보자면, 성리학의 틀을 뛰어넘어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말해주고 싶었던 한 경계인(境界人)의 발분(發奮) 저서다. 연암은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열하일기에 쏟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배우고 깨달은 많은 것들을 이 책에 쏟았다...‘     


라고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의미와, 학자로서의 자신의 노고를 스스로 밝히고 있다.      


과연 박교수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연암의 천재성에 수없이 감탄했고, 박교수의 25년 연구의 결과물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피터팬 PD가 올여름 제주의 무더위를 잊을 수 있을 만큼, 큰 감동을 받은 책이기에 3회에 걸쳐 서평을 자세히 쓰고자 한다. 그럼, ’한 경계인의 꿈이자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모험 서사에 함께 참여해서, 브런치 독자분들도 새 세상을 향한 열망을 품게 되길 기대한다 ‘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 4년), 연암 박지원이 친척 형인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청(淸) 나라 건륭제의 칠순연(七旬宴)에 참석하는 사신의 일원으로 동행하게 되면서 기록한 중국 기행기이다. 중국 연경(燕京=북경=베이징)을 지나,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지인 열하(熱河)까지 기행 한 기록을 담았는데, 중국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燕京)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중국의 문물제도를 목격한 내용을 각 분야로 나누어 기록했다.    

 

사실 사신 일행과 연암은, 1780년 5월 25일에 한양을 출발해서, 그해 10월 27일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연암이 쓴 열하일기는, 1780년 6월 24일 압록강 국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요동(遼東) ·성경(盛京) ·산하이관[山海關]을 거쳐, 베이징[北京]에 도착하고, 다시 열하로 가서, 8월 20일에 베이징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약 2개월 동안 겪은 일을 날짜 순서에 따라 적었다. 

<1780년 박지원 일행이, 청나라 황제의 칠순 잔치를 축하하려고, 황제의 여름 별장인 열하까지 갔던 일정 >


조선의 사신 일행이 황제의 자금성이 있는 베이징이 아닌,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250 킬로미터나 떨어진 열하(熱河, 지금의 허베이성 청더(承德))로 가게 된 이유는, 베이징(=연경=북경)에 도착해보니, 청나라 황제는 열하에 가고 연경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까지 가게 된 것이다. (열하일기에는 베이징에서 열하의 거리가 400리(160킬로미터)라고 되어있으나, 현재 베이징에서 청더(=열하)의 거리는 250KM이다. 연암의 오류이거나, 청나라 시대의 열하보다, 지금의 청더가 더 커지면서 생긴 차이가 아닐까 싶다)      


”....... 열하일기는 여행 기라는 형식 속에 일기, 소설, 서문(序文), 한시 등 고전의 다양한 장르가 담겨있다. 문학 외에도 정치 경제 음악 미술 건축 의학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연암의 식견이 맛깔난 비빔밥처럼 잘 버무려져 있다... “     


연암은 탁월한 문장가이기도 했는데, 연암의 위상을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학자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 조선 500년 역사에 퇴계, 율곡의 도학(道學)과, 충무공의 용병(用兵)과, 연암의 문장, 이 세 가지가
나란히 특이할 만하다..... “ - 창강 김택영(1850~1927)-     
”... 우리나라 문장가들은 입만 열면, 성리학을 베끼는 폐단을 보였는데, 오직 연암만이 여기서 벗어났다.... “ -운양 김윤식 (1835~1922)      


왜 이렇게 연암을 칭송할까? 박수밀 교수는 그의 불면증에서 이유를 찾아본다.      


”... 연암은 18세 전후로, 오랜 세월 불면증에 시달렸다. 연암의 둘째 아들 박종채의 증언에 따르면, 연암은 젊은 시절 권력과,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고, 이리저리 빌붙는 아첨꾼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상대하다가
비방을 자주 받았다. 일그러진 이상과 현실, 쏟아지는 원망의 말들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다.... “   

   

”.... 연암의 이런 상처는 인간의 마음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하여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 갈 수 있었다... “     


<연암 박지원의 초상화. 연암의 손자인 박수주가 19살에 그렸다. 아버지 박종채가 설명한 모습을 상상해서 그렸는데, 연암과 7할 정도는 닮았다는 평을 들었다>


연암은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정조의 명에도 항명한 ’ 지조 있는 선비‘이기도 했는데, 연암의 열하일기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채 탈고가 되기도 전에 너도나도 베끼고 전해서 한양의 화제가 되었다. 그러자 정조도 열하일기를 읽었는데, 정조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그도 당연한 게, 조선의 왕이란 성리학의 세계를 부정할 수 없는데, 연암은 성리학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를 열하일기에서 자주 언급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연암에게,      


”... 요즘 풍문이 이같이 된 것은 그 근본은 따져 보면 모두 다 박 아무개의 죄다.
열하일기는 내 이미 익히 보았는데, 이 자는 법망에서 빠져나간 거물이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에 문체가 이와 같이 되었으니
당연히 결자해지 하도록 해야 한다.... “     


라고 명령했다. 즉 성리학의 고풍스럽고 점잖은 문체가 아닌, 새로운 사상을 주장하는 새로운 문체가 거슬렸던 거다. ’ 세상을 타락시키는 수괴‘ 연암에게 ”...... 바르고 순수한 글을 지어 다시 올리라 “ 명령을 내린 건데, 연암은 왕의 추상같은 명령에, 우회적으로 대든다.(!)


”...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면, 벼슬을 주신다고 했는데 여기에 편승해서 글을 지어 바치면, 바라서는 안 될 벼슬을 바라는 것이 되고,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신하 된 자의 큰 죄가 되겠기에 글을 지어 바칠 수 없다.... “


과연 조선의 천재 문인 연암답다. 

덕분에 우리 후손들은, 연암이 쓴 원문 그대로의 [열하일기]를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자, 그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조선시대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연암의 작품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자.      


<피터팬 PD가 서평을 쓰고 있는 책인, [열하일기 첫걸음/ 박수밀 교수 / 돌베개]. 조선의 천재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입문하는데, 더없이 좋은 책이다. 강추!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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