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E.』로부터의 대화
『E.E.』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초기작이지만,
그녀의 세계가 처음으로 완전한 구조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말을 잃은 소녀 에르나는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자신이 아닌 존재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게 됩니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통로가 됩니다.
『E.E.』는 말과 침묵, 몸과 영혼,
심령과 의학 사이의 균열을 파고들며
인간의 가장 깊은 침묵을 응시합니다.
오늘 제제는,
자신도 자주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올가에게 조심스레 묻습니다.
제제:
올가, 나는 말을 삼켜본 적이 있어요.
아주 말하고 싶은데,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순간.
그럴 땐 목이 콱 막히고,
가슴이 간질간질해요.
『E.E.』의 에르나는 왜 말을 못하게 된 거예요?
올가:
그건, 제제야,
말이 너무 많아져서일 수도 있어.
에르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세상의 목소리를 대신 듣게 되었지.
그건 병이기도 하고,
또 다른 감각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어.
우리 안에 너무 많은 말이 쌓이면,
어쩌면 그건 더 이상 내 말이 아닐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은 때로 말을 삼키지.
그건 고통이지만, 동시에 기다림이야.
제제:
난 어떤 말들은 그냥 꾹 참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어른들은 말하지 마, 참아야 해, 라고 해요.
근데 왜요?
왜 말하고 싶은 걸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올가:
왜냐하면, 제제야,
사람들은 두려워하거든.
진짜 말은,
누군가의 내면을 건드리는 말은,
늘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야.
『E.E.』에서 어른들은 에르나의 말을 이해하지 않고,
그걸 병으로 판단했지.
왜냐하면 그녀의 말은
기존의 세계를 흔드는 말이었거든.
사람들은 자기 세계가 무너지는 걸 무서워해.
그래서 아이들의 진실한 말이 두려운 거야.
제제:
나는 때로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아플 때도, 맞을 때도,
몸이 저만치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하죠?
올가:
아니, 이상하지 않아, 제제야.
에르나도 그랬거든.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자신이 투명해지는 기분을 느꼈어.
몸은 있는데,
그 몸이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않는 느낌.
그건 어떤 경계의 체험이야.
고통은 종종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밀어내지.
그러나 그 틈에서
우리는 보통 때는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기도 해.
제제:
그럼요, 내가 말하지 못한 말들,
속으로만 삼킨 말들은 다 어디로 가요?
그냥 사라지나요?
올가:
그 말들은 어디론가 다 간단다.
몸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꿈속으로 스며들기도 해.
에르나는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영혼을 받아들이게 되었지.
말하지 못한 말은
다른 방식으로 반드시 말이 돼.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그림으로,
또는 병이 되어서라도 말이 되지.
그러니까, 제제야,
너의 침묵도 언젠가는 반드시 들릴 거야.
제제:
에르나는 마지막에 구원받았나요?
아니면 그냥 병이 낫고 끝난 건가요?
올가:
구원이라는 건 말이야, 제제야,
항상 무언가를 잃은 뒤에 오는 거란다.
에르나는 병이 낫기 전에,
자신의 언어를 다시 발견했어.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말.
『E.E.』는 결국,
잃어버린 자아가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이야기야.
그게 바로 구원이지.
말은, 결국 자기 자신을 되찾는 통로란다.
『E.E.』는 올가 토카르추크가 인간 내면의 침묵을 처음으로 서사화한 작품이다.
에르나는 몸과 영혼 사이의 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말을 잃고,
다른 존재들의 언어를 흘려보낸다.
이 작품은 정신의학적 통제와 사회적 규범에 대한 저항이자,
말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문학적 헌사다.
올가는 이 작품으로,
질병과 침묵, 여성성과 구원이라는 테마를
한 번에 응축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윤곽을 처음으로 완성했다.
『E.E.』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