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레와 제도의 힘
연암 박지원이 북경으로 향하는 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건물이나 황제의 위엄이 아니었다. 그것은 길 위를 가득 메운 수레였다. 곡식과 소금, 비단과 도자기를 싣고 거침없이 달리는 수레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말발굽의 굉음이 대지 위에서 울려 퍼졌다. 수십 리를 이어지는 대열은 마치 거대한 동맥을 따라 흐르는 피처럼 제국을 움직이고 있었다.
조선의 한양에서라면 성문을 나서자마자 논밭이 펼쳐지고, 곡식을 실은 소달구지가 비틀거리며 겨우 길을 메우던 풍경이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도로가 체계적으로 뻗어 있었고, 그 위를 오가는 수레와 말이 끊이지 않았다.
연암의 눈에 이 풍경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문명의 동력, 제국을 떠받치는 근본으로 다가왔다.
“我國以一牛曳重載 彼則車馬並馳 十能敵百” (아국이일우예중재 피즉거마병치 십능적백)
“우리나라는 겨우 소 한 마리로 무거운 짐을 끌지만, 저들은 수레와 말이 함께 달리니 열이 백을 당한다.”
— 《성경잡지(盛京雜識)》
짧은 구절이지만, 그 안에는 조선과 청의 격차가 응축되어 있다. 연암은 화려한 수사 없이 간명한 문장으로 기록했으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강렬하다. 조선의 운송은 비효율적이었고, 역참 제도는 사실상 무너져 있었다. 무거운 짐을 소 한 마리에 의존해 끌어야 했고, 농산물이 시장에 도착하기 전 이미 썩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청은 도로 정비와 수레·마차의 활용, 교통망의 효율적 관리로 제국의 물류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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