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역사] 7편. 미적분

— 무한을 길들이려는 인간의 시도

by 이안

1. 서두 — 질문과 장면 제시


강물이 흐른다. 순간의 물살은 잡히지 않고, 곡선은 끝없이 굽이친다. 사과는 떨어지지만 그 순간의 속도는 언제나 변하고, 행성은 궤도를 따라 돌지만 그 궤적은 끊임없이 바뀐다.


인간은 이 변화와 흐름을 어떻게 수로 붙잡을 수 있을까?


한 점에서의 속도, 한 순간의 기울기, 끝없이 쪼갠 넓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개념들을 계산의 언어로 다룰 수 있는가? 17세기 후반,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거의 동시에 이 질문에 답을 시도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언어가 바로 미적분이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계산 기법이 아니라, 무한히 작은 것과 무한히 큰 것을 수학의 손에 쥐려는 대담한 도전이었다.


미적분은 묻는다. “무한을 다스릴 수 있는가?”


2. 본론 1 — 역사적 사건과 인물


아이작 뉴턴(1642–1727)은 케임브리지의 젊은 학자 시절, 흑사병으로 고향에 머무르던 1660년대 중반에 미적분의 핵심 아이디어를 다듬었다. 그는 움직임을 “순간의 변화율”로 파악했고, 곡선 아래 면적을 “끝없이 작은 구간의 합”으로 계산했다. 이 방식은 그가 후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만유인력 법칙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했다.


한편, 독일의 라이프니츠(1646–1716)는 전혀 다른 기호 체계를 만들었다. 그는 미분을 dy/dx로, 적분을 ∫기호로 표기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상징 언어를 남겼다. 뉴턴이 주로 물리학적 문제에서 출발했다면, 라이프니츠는 기호와 논리적 구조의 우아함을 강조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같은 수학적 세계를 열어젖혔다.


그러나 누가 먼저냐를 둘러싼 격렬한 우선권 논쟁은 두 학자의 명성을 갈라놓았다. 영국은 뉴턴의 방식을, 대륙은 라이프니츠의 기호를 따르며 한 세기 동안 분열을 겪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두 사람의 업적은 결국 합쳐져, 오늘 우리가 배우는 미적분의 기초를 이루었다.



3. 본론 2 — 철학적 전환과 긴장

미적분의 심장은 무한이다.


곡선을 무한히 잘게 쪼개 한 점에서의 기울기를 구하고, 무한히 많은 조각을 더해 면적을 계산한다. 이 과정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만, 수학적으로는 모순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끝없이 작은 양(무한소)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편리한 상상일 뿐인가?


뉴턴은 이를 “유율(fluxion)”이라 불렀고, 시간의 흐름 속 변화율로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무한소를 일종의 수학적 단위로 다루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이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무(無)의 크기를 더해 넓이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비판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미적분은 변화와 운동을 포착하는 혁신적 언어였지만, 동시에 엄밀성의 위기를 낳았다. 19세기에 와서야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가 극한 개념을 도입해 “무한히 작은 것”을 “ε-δ 논리”로 재정의하면서 이 긴장은 해소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 수 세기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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