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역사] 6편. 데카르트, 좌표로 세계를 그리다

by 이안

1. 서두 — 질문과 장면 제시


한 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말로 붙잡는가.


“오른쪽으로 조금, 위로 더”는 언제나 흐릿하다. 두 개의 직선을 세우고 그 교차점을 원점으로 정한 뒤, 거리를 수로 표기하는 순간, 세계는 수의 그물에 걸린다. 이 간단한 발상이 도형을 방정식으로, 그림을 문장으로 번역하는 길을 열었다.


17세기 프랑스의 데카르트는 이 번역의 언어—해석기하학—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기하학의 새로운 기교가 아니다. 르네상스 이후 축적된 대수 기호화(비에트), 원근법·지도제작의 좌표 감각, 천문·탄도학의 정량화 요구, 그리고 데카르트 자신의 확실성에 대한 강박(“명석판명”)이 하나의 문으로 수렴한 결과였다.


좌표는 계산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세계는 수학의 문장으로 재기술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도발이었다.


2. 본론 1 — 역사적 사건과 인물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방법서설(1637)』의 철학자이자, 부록 『기하학(La Géométrie)』의 수학자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난로가 있는 방”에서 사유의 방법을 다듬었고, 거기서 명증한 원리로부터 연역하는 과학의 모델을 꿈꾸었다. 당시 유럽에는 비에트(16세기 말)가 도입한 체계적 기호 대수, 나피어의 로그(1614), 케플러의 행성법칙(1609/1619), 갈릴레이의 수학적 자연학이 이미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이 흐름 속에서 평면의 점을 (x,y)로, 곡선을 방정식으로 적는 방식을 제시했다.

직선 y=mx+b, 원 x^2+y^2=r^2 같은 표기법은 오늘 우리에겐 초등의 상식이지만, 당시엔 도형=시각,

방정식=문자라는 두 세계를 잇는 다리였다. 동시대의 페르마 역시 독자적으로 유사한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기하학을 대수의 언어로 전면 환원하려는 프로그램을 선명히 제시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전) 서울 MBC 라디오 PD.

64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33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5화[수학의 역사] 5편. "알콰리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