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空)의 철학이 연기를 다시 열다
아비달마는 불교 철학을 가장 정밀하게 체계화한 사유의 전통이었습니다. 법(dharma)을 낱낱이 분류하고, 그것을 토대로 수행의 지도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세분화가 깊어질수록 법은 늘어났고, 목록은 복잡해졌습니다. 법을 나눈다는 것이 곧 해탈의 길인가, 아니면 집착의 새로운 형태인가.
“법을 나누는 일이 과연 진리의 최종 모습일까?”
이 물음이 떠오를 무렵, 불교는 전환의 순간을 맞습니다. 그 전환의 주인공이 바로 용수(龍樹, Nāgārjuna)였고, 그의 저작 『중론(中論, Mūlamadhyamakakārikā)』은 불교 사유의 새로운 하늘을 열었습니다.
『중론』에서 용수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곧 공(空)의 철학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는 “어떠한 법도 스스로 생기지 않고, 타자로부터도 생기지 않으며, 둘 다로부터도 생기지 않고, 무인(無因)으로도 생기지 않는다.”라고 논증했습니다.
부처님이 설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다.”는 말은 용수에게서 더욱 철학적으로 확장됩니다. 연기는 곧 공이고, 공은 곧 중도였습니다.
연기는 모든 존재가 조건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
공은 그 조건적 성립을 실체화하지 말라는 경계,
중도는 실재론과 허무론의 양극을 모두 벗어나는 길이었습니다.
아비달마가 법을 실재하는 단위로 붙잡았던 곳에서, 용수는 그 법조차 공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