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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팡 Dec 10. 2020

가난해 보이지 않기 위해

오늘도 돌려놓고 비우고 버린다.

"촬영장에서 가난해 보이는 집의 세트를 꾸밀 때는 오히려 간단하다. 손 가는 대로 물건을 많이 두면 된다. 한마디로 그 집의 살림살이를 많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부잣집을 연출할 때는 생각이 깊다. 공간을 비우고 남기고 단조롭지만 조화롭게 여백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내 맘대로 각색해서 집안 살림을 돌보는데 가장 큰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기억을 더듬으면 굉장히 단순한 한 줄짜리 문장이었는데 내 나름대로 풀어내고 이해하려 애쓰다 보니 글에 살이 붙었다. 그만큼 곱씹은 것이다.

이 글귀를 만난 그 당시에 나는 낡은 아파트를 스스로 인테리어 하겠다고 맘을 먹고 이런저런 자료를 뒤지던 참이었다. 집이란 공간이 "여기 사는 사람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당연히 허영에 떠밀려 장바구니를 꾹꾹 채우기 바빴다.  그런 물욕 가득한 시점에 만난 문장이라 그런지 더 아프게 꼬집혔나 보다. 장바구니에 담긴 모든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 보낸 걸로 기억난다.


하지만 처음의 그 각오는 어디 가고 몇 달 새 가난해 보이는 집이 되어 버렸다. 절제했으니 이 정도 일까. 사실 통장의 체력이 달린 것이 원인이겠지만 아무튼 오늘도 수 만 가지 살림살이 속에서 공간이 어지럽다.

우리 집에만 머무는 회오리 요정이 있는지 온 갓 것을 휘휘 저어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게 없다.


물건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닐 테니 결국 내가 물건을 태운채 집안 곳곳을 유랑하는 거겠지.
오늘도 나는 돌려놓고 비우고 버리려고 노력한다.


일요일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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