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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팡 Dec 10. 2020

1인가구 주거서비스 스타트업에서 한 살 먹음.

1년 동안 1인가구에 대한 착각 속에 지내다.

어느덧 1년 하고 1달이 지났다.

마케터로서 2020년은 어떤 분야던 녹록지 않은 한해였을 것이다. 물 들어와 노 젓는 것도 힘들었을 테고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진 땅바닥을 보며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야 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올해를 기억해 두고자 일의 극히 일부를 조각내 쓴다. 꽃잎 하나 떼어다가 세상 모든 향을 맡은 것처럼 과장해서 적었다.

맞는 말인지 확인이 어렵다. 옳은 생각인지 알 수 없다. 사용된 통계는 최신 버전이 며칠 전 나왔지만 방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속도에 가속이 붙은 듯하여 고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변함이 있다.

현실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자. 1년이란 시간은 되돌아볼 일도 되돌리고 싶은 것도 많았을 시간이다.




내가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1인가구에 대한 사고의 장벽 몇 개 나열해 본다.

* 참조한 데이터의 출처는 아래와 같다.

1) 통계청 / 인구주택총조사에 나타난 1인가구의 현황 및 특성- 2018

2) 통계개발원 / 한국의 사회동향 - 1인가구의 삶의 질 - 2019


#편견01 - 1인가구는 대학생, 취준생, 이제 막 취직을 한 사회초년생이다.

통계로 보건대 1인가구의 연령분포에서 2034가 차지하는 부분은 24.3%이다. 1인가구 전체 구성의 1/4 수준이다. 우리는 24.3%를 바탕으로 1인가구를 정의하고 타겟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래 그래프를 보면 1인가구는 여러 세대에 걸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미혼율과 이혼율의 증가, 부의 양극화로 45세 이상 중장년층의 1인가구 증가율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1인가구 주거 서비스 브랜드들은 시장의 1/4 밖에 되지 않은 2034 세대에게 매달리고 있는 걸까? 아마도 "뇌(내) 생각"에는 젊은 세대를 벗어난 1인가구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설계하자면 청년 세대 문제를 넘어 전세대에 걸친 사회 문제에 직면해야 하는 거북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거 서비스 설계가 얼마나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지 모른다. 미혼율과 이혼율로 인한 중장년의 1인가구 증가 뿐만 아니라 취업율 저조와 부의 양극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 수 많은 사회적 현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당장에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OECD 1위, 노인 빈곤율 1위, 쪽방촌 독거노인도 1인가구에 속한다.


또한 고객의 연령층을 조금만 올리면 흔히들 말하는 위트 있고 Z스러운 마케팅을 하기 어렵다. 우리의 브랜드가 실버타운으로 보이는 것이 두렵고, 젊은 세대들에게 외면받을까 무섭고, 시대의 흐름에 뒤 쳐 저 스타트업이라는 옷이 훌러덩 벗겨질까 불안하다. 무엇보다 힙한 서비스만 쫒는다는 밴처 투자사들이 과연 거들떠나 볼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통계청 / 연령별 1인가구 비율


이럼에도 불구하고 서스 현장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특정 세대만을 고객으로 둘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입주민의 라이프스타일과 컬처 핏을 검증한답시고 인터뷰하고 연령의 커트 라인을 대놓고 만들었다 치자. 그렇게하면 제한된 연령층만으로 그 많은 호실을 채울 수 있을까?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우리가 설정한 청년 고객층은 주거 비용 지불 능력이 그리 높지 않다. 그전에 "여기 조용한 방 하나 주쇼. 월세는 따박따박 잘 낼 테니 걱정 말고"라며 찾아오는 중년의 고객을 빈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중히 돌려 보낼 수 있는 신념이 우리에게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이트들은 월세 시세가 높게 책정되는 역세권의 베드타운 또는 다양한 연령층의 수요가 있는 오피스타운에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에서는 우리 브랜드를 위해 핏(?)한 고객을 모셔 오는 그런 수고 따위는 할 생각이 없다. 그냥 원룸 찾는 고객에게 빈방 보여주며 계약하는 것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주사위를 굴려 2034라는 숫자가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운이 좋아 주사위의 합이 딱 맞는 타깃의 고객이 입주를 한다고 해도 그 고객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의 연령은 진짜 대중없다.


#02 - 1인가구는 원룸에 산다.
우리는 1인가구는 당연히 원룸에 살아야 한다고 단정해 버린다. 그런데 원룸에 자발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7평 남짓한 원룸에 살고 싶어 하는 1인가구는 아무도 없다. 침실과 구별된 주방과 옷방 정도는 누구나 필요로 한다. '나혼자산다'를 보면 30대 중반의 캐릭터들이 한강뷰 빌라에서 먹고 잔다. 혼자 산다고 외롭다 하지만 주거환경만 놓고 보자면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다. 이것만 봐도 우리가 가진 상품(원룸)이 1인가구를 위한 최선의 맞춤 상품이 아니며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류의 상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자차는 없고 걸어가기에는 멀다면 지하철을 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모든 소비 활동은 이런 맹락 아닌가.


#03 - 1인가구는 돈이 없다.
어느 정도 맞다. 2034 세대는 기성세대와 비교하면 당연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기성세대이고 그런 말을 하는 일부 기성세대 역시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살고 있는 집의 평수가 곧 사회적 성공이라는 의식이 정말 공식이 되어 버린 요즘, 원룸에 사는 것을 가난이라는 틀로 테두리 쳐 버린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원룸이나 고시원 등으로 내몰았을까.

기성세대들이 젊은 날에 경험했던 하숙과 자취의 향수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향수가 변질되면 그만큼 역한 냄새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파는 서비스가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이다. 2034 세대들의 노동시장 진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도시 생활에 있어 주거 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은 점점 늘고 있다. 1인가구 임금근로자 35.9%은 월평균 200만원을 채 벌지 못한다. 사회 초년생의 평균 임금이라는 200-300만원 구간의 비율도 35.7% 뿐이다. 우리 서비스 이용 비용은 월평균 약 90만 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고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적 가치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월에 300만 원 이상 벌고 월세로 100만 정도는 지불할 수 있는 2030 주변에 참 많지요?"


통계청 / 1인가구 월소득비율


그렇다 보니 고관여 고비용 상품을 팔기 위해 고객 정의를 그럴싸하게 끼워 맞출 수밖에 없다. 구매력이 충분한 가상의 캐릭터를 잡아놔야 마케팅과 그 밖의 째내 나는 브랜딩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또는 그녀는 자기 계발과 여가생활에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며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혼자 여행을 가거나 주말에 가까운 호텔로 호캉스를 떠나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남들과 같은 보통의 일상 속에서 나만의 낯선 삶을 유지하는 그 또는 그녀는 7평 남짓 원룸 월세에 삽니다.


약간의 비꼼과 비약을 한스푼씩 첨가 했지만 대충 이렇게 살아야 우리 브랜드의 뮤즈가 된다.

보증금 마련도 버겁고 눈만 뜨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는 월세 납입일을 걱정하는 대다수의 1인가구들과 닮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일지 계속 두고 볼 일이다.



#04 - 1인가구는 외롭다.

여럿이 살던, 혼자 살던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의 결이 조금 다를 뿐이다. 오히려 자발적 외로움(고립과 독립)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2034세대 미혼 1인가구를 대상으로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 조사 결과 주거환경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통계가 있다.


오늘도 충분히 잘 살았고, 내일도 바쁠 예정인 사람들에게 원룸이 주는 주거환경의 제약만을 근거로 외로운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초대장을 보내 봤자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냉소뿐이다.

혼자 살아서 외로운 것도 아니고 원룸에서 살고 있어서 더 외로운 것도 아니다. 외로움이란 그렇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혼밥과 혼술이 지난 시절의 단어가 된 요즘 2034 1인가구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연하게 혼자이니 외롭다 라고 정의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이다. 이들은 외로울 틈도 없을 뿐더러 외로움을 격파할 다양한 지략을 가진 적극적인 세대이다. 기성세대들의 외로움과는 분명 다를 것이고 나 역시 타인의 외로움과 특히 다른 세대의 외로움은 멀찍이 서서 넘겨짚을 뿐 감히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고객은 우리를 떠나기 위해 우리에게 오는 것이고 언제든지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다. 말 그대로 기간이 정해진 계약으로 성립된 관계인 것이다. 그러니 계약된 시간 동안 브랜드 경험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다른 소비재 상품과 달리 주거(원룸, 아파트 등) 상품은 재구매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주거 서비스에서 '기회가 되면 다시 살고 싶어요'라는 후기를 받을 수 있다면 말 다한거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서비스가 인간적인 요소를 갖추고 1인가구의 커뮤니티를 재해석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공동의 공간을 개발하고(라운지든 로비든) 그 공간을 통해 비용(월세나 관리비) 대비 더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만족감과 함께 자연스러운 바깥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의 할 점은 이 공동의 공간이 서비스 이용 금액의 증가로 이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는 부가 서비스 형태로 인식되어야 한다.

내가 갈 수 있는 공간이 이 집 말고 또 있다 라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꼭 삼삼오오 모여 주제가 있는 대화를 해서가 아니라 1인가구에게는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작고 소소한 행동들이 원룸이 주는 물리적 고립감을 물리치는 혼잣말 같은 것이다.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라는 노랫말처럼 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마음 편한 커뮤니티는 건물 밖에 따로 있는 법이니 억지로 '모이세요! 하세요!' 보다는 공ㅛㅇ 공간을 너럽게 잘 설계하는 것이 원룸의 평수를 높여 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선의 서비스이다.


우리가 스타벅스에서 과제를 하는 이유도 내가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안심에서 오는 능률 때문인 것처럼 좁은 원룸에서 획득하지 못한 가치들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


#생각보다 길어진 글을 마치며 (문제 의식은 있는데 마땅한 결론이 없다.)
오늘도 1인가구들은 집 문을 열자마자 방안 가득 널브러진 살림살이를 보며 "원룸은 좁아 죽겠다" 라 습관처럼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넓은 집으로 이사 갈 돈은 없으니 "참고 살자"는 신세 한탄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나는 그랬는데, 나만 그럴까?


노량진에서, 선릉에서, 신림에서, 망원에서 수많은 1인가구들이 좁은 원룸 침대에 스프링처럼 자신을 웅크리며 고단한 몸을 뉘인다. 동시에 지금은 눌려 있지만 그만큼 높이 튀어 오르는 날이 반드시 올 거란 각오를 다지는 곳, 우리에게 원룸은 수련의 방이기도 하다.


1인가구의 주거 서비스 산업은 정부든 민간이든 누군가는 꼭 손을 놓지 않고 해야만 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지금도 정부의 정책이 수시로 발표되고 있으며 1인주거 서비스 산업을 하는 회사들 역시 건전한 경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작게 바라건데 우리 회사가 우리 원룸이 우리 서비스가 1인가구들이 더 큰 세상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며 성장하는 인큐베이트 박스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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