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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팡 Dec 14. 2020

그런 마음이 든다.

동일한 장소 또는 같은 시간을 산다는 이유만으로.

말을 하면 절로 흥이 나는 기억이 있고, 애써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2002년 월드컵이 그렇다. 후배는 광화문에서 낯선 사람과 부둥키며 방방 뛰었다 하고, 어떤 선배는 강남대로 차 사이를 손뼉 치며 누볐다 하고, 친구는 광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 섹션 보드를 신호에 맞춰 힘껏 들어 올렸다고 한다.


이런 기억을 말하는 그들을 보면 환희에 차 있다.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는 말 그대로 우리를 신화 속에 살던 인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트로이 목마 속에 있던 병사들이 자신의 무용담을 말하는데 어찌 벅차오르지 않으랴.


나는 그 당시 군인의 신분이라 민간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흥이 덜하다. 배가 뽈록 나온 내무반 브라운관 TV를 앞에 두고 30명 정도 되는 까까머리들이 서로의 뒤통수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응원을 했다. 초 여름 매미 소리가 우렁찼고 TV 속 붉은색은 한 껏 부풀어 선명했다. 광화문보다 북녘땅이 가까운 곳에서 겪은 그날의 감상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




우리는 어떤 장소나 동일한 시간 속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횐희를 느끼기도 하고 무거운 죄책감을 짊어지기도 한다. 진도 앞바다에서 기울어진 배가 그랬고, 지하철 승강장에서 나뒹굴던 컵라면 하나가 그랬다. 아주 잠깐 숨을 돌리고 싶었던 택배기사의 숨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그가 남겨 놓은 수북한 상자만큼 죄책감이 마음속에 배달 된 일이 그랬다.


이런 습하고 쿰쿰한 감정은 빠르게 전이되지만 그만큼 침묵과 외면도 빠르게 복사된다.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먹먹함은 억지로라도 물 한바가지를 부어 희석시켜야 했고 사는 내내 마음속에 얼룩으로 남아 함부로 입밖에 내어서는 안되는 기억이 된다.


이렇듯 모든 감정들은 기억이란 확장자로 변환되어 마음속에 저장된다. 이런 기억의 회로는 뜬금없이 오작동을 일으켜 호흡을 가쁘게 하고, 어제 저장된 그 못된 기억은 아무리 리셋 버튼을 눌러도 사라지지 않은체 오늘 하루를 온통 먹통으로 만든다.


사람은 기억으로 산다고 했다. 인간은 단 하루의 기억만으로도 오랜 감옥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어떤 소설의 내용이 떠오른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밥을 먹으며 밥 먹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익숙하다.


올해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감사와 환희보다는 무기력하고 죄책감이 드는 일이 더 선명하다. 밥벌이의 어려움이 있었고 관계의 어려움도 여전하다. 그리고 그 어려운 마음 중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공간과 시간 속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을 자책하고 울컥하게 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마음들을 하나둘씩 인정하고 다독이니 한 해의 마무리가 조금 편해진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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