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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휘 Aug 05. 2024

정신건강의학과 3

죽은 이유를 알려주는 상자가 있는 곳


온몸이 너무 아프다. 허벅지가 찌릿, 팔목에 찌릿, 어깨가 찌릿,, 몸이 무겁다. 62킬로에 육박하던 몸무게에서 50킬로가 된 지금, ‘몸이 무겁다’는 다른 느낌인데, 그때는 살이 많아서 몸이 둥실둥실하고 움직이기 힘들고, 옷 입는 게 힘들고, 앉아서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아서 많이 먹으면서 몸이 무거웠다면,


이번 경우는 달랐는데, 신나게 물가에 들어갔다 나와서 축축하게 젖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님, 엄청나게 춤추고 논 다음 날의 숙취와 속 쓰림의 몸의 무거움이랄까.... 그런 무거움이었다.


예를 든 경우는, 즐거움을 동반한 후의 후회와 약간의 즐거웠던 감정이 뒤섞임 속의 무거움이지만 지금 현재 상태는 우울함의 축척된 무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가끔은 일어날 때 핑 돌아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럼 도대체 왜 핑핑 돌고 난리야 하고 일어나면 또 핑그르르 주저앉는다. 내가 보기엔 왜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눈꺼풀 떨림이 있는 것처럼 그 정도의 가벼운 증상이었는데, 이게 가면 갈수록 더 상태가 나빠지는데, 그 이유를 찾아보자면 서운함과 외톨이 같은 마음이 동반되어 더 극으로 치닫는 느낌의 무거움이었다. 핑그르르 돌 때의 서러움이 이 몸과 마음의 아픔을 더욱더 증폭시켰다.     



남편한테 말한 적이 있다. 몸이 힘들다고... 그랬더니, 할머니같이 왜 그러냐고 말했다. 더 이상 대화 끝.     



한 달에 한번 또는 3개월에 한 번 신경정신과 병원을 십여 년째 다니고 있다. 병원 가는 날 아침, 집에서 유튜브 방송을 재밌게 보던 남편이 말한다. “그 약도,,, 쯧쯧 야!!! 네가 일을 안 해서 몸이 안 힘드니 잠이 안 오니까 약을 먹지, 너는 일을 하세요, 약에 너무 의지하니 우울증 약이나 먹고 그런 거야!! 일 하면 아마 약 먹을 생각도 못하고 잘걸? 힘들어서! “라고 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완전 공주병!! 대화 끝.     


난 어차피 좋은 소리 못 들을 거 매번 똑같은 멍청이 같은 짓을 왜 할까?   몸이 힘든데 어디 말할 곳도 없고, 딱히 증상이나 무슨 병명도 없으니 뭐 아프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공주병일 뿐이고 그냥 그런 여자로 비쳤다. 적어도 남편에겐 게으른 그런 여자였다. 공주병이라 하니 정말 아재 같다. 좀 귀티 나는 게으른 여자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을까 혼자 생각하며 병원에 갔다.      


“선생님, 저 정말 괜찮아요! 술도 안 마시고요. 담배도 안 피고요, 잘 지내고 약도 잘 먹고 잘하는(일거수일투족 모두 괜찮다는 피알) 중입니다.” 3개월치 약을 주십사 아주 최대한 괜찮은 척을 하며 말했다. 내가 병원에 가는 목적은 약을 타기 위함이오. 내 진짜 힘듦을 얘기했다간 일주일에 한 번씩 불려 갈 게 뻔하므로 아님,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아주 괜찮은 심상이라고 말했다.      

“음, 그렇군요, 그럼, 요즘 일은 어떠십니까?” 오늘따라 선생님이 시간이 많으셨는지.. 질문을 하셨다. 이 멍청한 여자는 질문에 주저리주저리 대답했다. “사실 선생님, 제가 여기에서 진료받는 걸 남편이 정신이 나태해서 그렇다고 뭐라고 해요, 남편이 병원 갈 때마다 돈 생각 때문인지 뭐라고 하니깐 ”다만 잠을 잘 못 잘 뿐이에요. “라고 말하는 거예요. “라고 술술 말했다. ”근데, 문제은 힘이 들어서 요즘 일을 못해요, 제가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여자거든요, 애하나 있는 거 학원에 학원비를 늦게 내서 죄송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 학원비는 꼬박꼬박 내거든요? 근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근데, 남편이 자꾸 나가서 일을 하라고, 요즘 세대가 어느 세대인데 남편한테 빌붙어 먹을 생각 조차가 이상하다고 말하는데, 더 이상 말 하기 싫어서 거기서 대화는 끊겼어요. “ ”제가 남편한테만 의지하는 게 너무 미안하기도 해요,라고 말했더니 “몸이 안 좋아서 일 못하는 걸 왜 미안해합니까?”라고 맞받아 쳐주셨다. 잠시 선생님의 몸이 나에게 빙의되어 남편에게 조리 있게 말하는 상상을 했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머리도 아픈데, 이게 약을 오래 복용해서 그럴까요?”라고 물었다.      


약 때문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1월에 응급실에 오셨었군요? 하면서 차트를 찾아보더니, “빈혈 수치와 적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서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되시니 식사를 잘 챙겨 드시고요, 아무래도 피검사를 다시 하셔야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저번에 그럼 응급실에서 나온 수치는 정상이 아니었나?라고 두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고 있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똘똘한 의사 선생님은 차트를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 이 수치는 응급실에서는 정상수치라 말할 수 있으나 이게 일반적인 정상수치는 아니고요, 심각한 상태이니 검사를 다시 받아봅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렀잖아 나 몸이 너무나 힘이 든다고,,, 1월에 응급실에 실려갔던 이후로 피검사를 했을 때 분명 괜찮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병명은 말도 안 되게 장염이라고 했는데.... 배도 아프긴 아파서 장염이거니 했는데... 몸이 안 좋은 게 사실이긴 했다.  


응급실에서의 차가운 스텐침대 차가운 스텐냄새에서는 안 나오는 말들이 신경정신과 일명 정신병원에 가면 술술 나오는데, 우드톤의 상담실에서는 나의 입을 열어 한 번에 감정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향기 같은 걸 뿌려놓은 것 같았다. 특히, 오늘은...     

내가 요즘 일을 못하는 이유는 기운이 없어서였고 그 이유는 머리가 아파서였다. 어지럽고 일어나면 주저앉았다.  검사 수치상으로는 헤모글로빈수치가 너무 낮아 그렇다는 결론이었는데, 말 나온 김에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숨 막혀 죽을 거 같으니 입원시켜 주세요.”라고.... 의사 선생님은 일단 피검사부터 받으라 하는데... 머릿속엔 돈 생각뿐이었다. 분명히 피검사하는데 얼마, 오늘 진료비 얼마, 약값 얼마 하면 도대체 병원 한 번 올 때마다 얼마인지.... 천장을 보며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말했다.


“입원시켜 주시면 안 돼요?”라고 했더니 요즘 의료사태 때문에 정신병동은 폐쇄된 상태이고 피검사를 하고 피검사 수치에 따라 외과로 진단서를 내줄지 내과로 진단서를 내 줄지 협진을 하고 회의해 본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도 딱히 답이 없었다. 그냥 불쌍한 한 환자가 본인 앞에 앉아있는데, 그대로 보내면 죽어버릴까 두려웠는지, 고민을 얼굴에 잔뜩 얹은 채로 키보드 자판에 영어로 뭐라 뭐라 쓰고 있었다. 본인 나이 만한 40대 여자가 맞고 살면서 병원에서 정신과 안정제와 수면제 약을 타먹으며 여기 오늘입원 안 시켜주면 죽을 거 같다고 말을 하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입원할 요량도 안된다고 말하니...


그럼 병원 사회사업팀에 연결을 해 주신다고 말하면서, 오늘 피검사하고 사회사업팀에 상담을 받고 집에 가서 검사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 아. 그럼 오늘 진료비는 조금 나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상황에 맞지 않게 띤 소리를 짓거렸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힘든 걸 얘기한 들 뭘 아시겠어요”라고 말해버렸다. 머리가 멍청해진 게 분명하다. 멍청한 여자가 의사 앞에서 네가 뭘 알겠냐..라고 혼자 중얼대니 의사 선생님은 “환자분 상황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말고 피검사하시고 입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테니 일단, 감사 먼저 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야기 괘도에서 이탈한 내용을 끌어다가 제 자리가 갖다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뭐 빈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팔을 그어 피투성이로 병원을 갔던 십 년간의 기록이 그 정신병원 의사 선생님 차트엔 영어로 샤라라랄라라 낫낫이 쓰여있기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를 손에 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112에 신고된 내용을 보면 가정폭력에 신고가 되어있고, 정신과 진료기록엔 내가 받은 상처에 관한 기록에 다 있어서 내가 오늘 피 칠갑을 하고 맞더라도 이 병원에 다니길 잘했다 생각했다. ‘이렇게 말한다 해서 의사 선생님은 다 모르시겠지만,’이라고 했을 때 선생님이 ‘절대 아니다, 나는 너에 대해 다 알아’ 하며 장담하는 것처럼, 그 한마디. 환자분이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다 안다고 말하는 순간. 환자는 위로받았고 치유가 되었다 공감의 한 마디는 의사 선생님을 더 똑똑하게 보이게 했다. 마치 진료실에 마취 향수를 뿌려놓은 마냥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 말이 술술 나오게 하는 장소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은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아마 차트에 차곡차곡 기록이 되어있기 때문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진료기록, 비밀이야기 상자를 가지고 있는 의사 선생님. 간곡히 부탁드리는데, 여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 차트를 잘 지켜주길 바랐다. 그 차트가 없어진다면 십 년의 슬픔이 통째로 없어지는 것 같고 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죽었는지 그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 내가 곧 죽을 텐데 그 차트가 있어야 내가 왜 죽었는지, 112 조사관에게 말해줄 것이며, 내가 얼마나 괴롭고 고통에 시달렸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일말의 희망이 섞여 있었고, 나의 마음에서 죽을 준비가 되기 전에, 내가 남편한테 맞아 죽어버리면 이 세상을 편안하게 죽지 못하고 맞아 죽었을 때, 잠시나마 죽은 이유 따위는 사람들이 알기를 바랐다.


가족의 슬픔 말고, 그 죽음에 대해 알아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똑똑한 나의 주치의 정신과 교수님의 전화를 기다리기도  만감이 교차된다. 내가 정신과에 다닌 건 정말 잘한 일이야. 라며 뿌듯하게 피검사 결과 전화를 기다렸다.


그 이유를 알아야 할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는데, 그건 남편이다. 내가 죽은 이유는 단 하나. 너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죽으면 죽었겠구나. 슬프다,라고 생각하겠지만, 7년 연애를 하고 20년 사는 동안 한 순간은 그래도 잠시나마 사랑을 했을 텐데.. 그런 사람이 본인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단 한 번이라도 상기시키길 바라며. 1년에 1분이라도 본인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길 바랐다. 고작 그거면 됐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그리 다를 게 없다. 사는 게 지옥이고 여기가 지옥이다. 피검사를 하면서 맞아 멍든 팔을  보며 마음속으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남편에게...

내가 남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 남자한테 빌어먹을 생각으로 했던 말이 아니야, 나도 남들처럼 말 잘 통하는 사람과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야, 거지같이 더럽게 운 없고 내가 진짜 힘없고 힘이 없다는 명분을 위해 피 뽑고 수치결과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시험대에 올려진 것 같아 설렘도 느껴진다. 이 설렘의 결과가 나와서 내가 진자 아팠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내가 할머니여서 에고에고 힘들다 했던 게 아니라는 수치에서 나왔으면 좋겠어. 끝.               


나는 피검사를 하고 사회사업팀에 찾아갔다. 오늘은 외근을 나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늘의 검사비와 병원비는 57000원이었고, 약값은 4만 원이었다. 아, 맞다.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도 내가 아니고 피검사해 주시는 분도 내가 아니고 진료비 계산해 주는 기계도 내가 아니고 그냥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9만 원의 돈이 나갔다. 흡. 그럼 그렇지, 내가 아파도 그 누구도 참견하지 않는다. 병원비도 내 소관이고 약값도 내 소관이고 진료비도 내 소관이고 다 내소관이다. 그 누구에게 의지하려 한 거였는지... 여자는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워하며 97000원을 결재하고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금요일 5시는 남에겐 소중한 주말이었다.                


아이 보기에도 신경정신과에 입원하는 모양새도 그렇고 입원할 형편도 안 되었으니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뭐라도 병명을 내려주신다 하시니 이건 내가 할머니라서 일하지 못하는 이유하나쯤은 건져냈으니 성과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할머니가 된 이유는 나도 내가 왜 할머니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나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또는 공주병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할머니와 공주병 또는 심술보 튀어나온 얼굴이라는 단어를 쓸 때면 <할머니>라고 말할 땐 네가 화장품을 안 사줘서 그래,

<공주병>이라고 말할 땐 내가 어렸을 때 이쁨만 받아서 그래,

<심술보 튀어나온 얼굴>이라고 했을 땐, 네가 성형외과를 안 보내줘서 그래.. 라며 생각했다.


나는 왜 남편이란 인간에게 의지하고 있는가….

내가 병원비 필요하다고 말하니 이렇게 말했다.


“병원비 받고 싶으면 말 똑바로 해, 예의 있고 공손하게 “


음, 그동안 남편이 돈을 안 갖다 줄 때마다 나는 벌어서 애 학원비를 내고 이래저래 화장품과 심술보 들어가는 경락도 가끔 받았고 책도 사고 식료품도 샀다. 아쉽게도 모아둔 게 하나도 없이 버는 돈은 생활비로 썼다. 그래서 사태의 심각성을 그리 느끼지 못했다. 없으면 나가 벌어서 내가 필요한 걸 사다 쓰면 되니까… 하지만. 이제야 어리석고 멍청한 여자는 깨달았다. 내 몸이 아파 일을 못하면 남편에게 예의 있고 공손하게 말해야 한다. 아님, 십 원 한 장 얻을 수가 없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에게 말을 시킨다. “티브이 언제 꺼? 안 자? 나 내일 할 일 많아. “ 내가 가만히 앉아있으니 또 말한다. ” 왜 또 이제 나랑 말 안 하기로 작정했냐? “


그 멍청한 여자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할머니 같고, 공주병 같고 심술보가 툭 튀어나온 여자는 여기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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