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일을 못하면 할머니가 된단다.
네일숍에 갔다. 십 년 동안 이렇게 긴 손톱은 처음이라 흥분된 즐거움을 참을 겨를이 없었다! 손톱을 이렇게 가꾸는 건, 속이 텅 비어버린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아닐까? 라며 언니랑 수다 떨었다. 내가 도박을 하나, 주식을 하나, 뭐 아주 소박하게 네일숍 다니는 아주 작은 사치는 날 살게 해 주는 장소이다.
십 년 동안 다닌 신경정신과차트엔 나의 모든 고민이 들어있다. 의사 선생님한테, “이렇게 얘기한다고 선생님이 뭘 해하시겠어요.”라는 도발을 했는데… 잘생긴 나의 주치의선생님이 차트를 촤르르 보시며, 말씀하셨다.
정상수치가 아니니 피검사 먼저 하자고 하셨다.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이 살면서 설명해도 못 알아먹는 사람이랑 얘기하느니, 병원에서 검사수치로 알려주시니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랄까… 의사 선생님한테는 지나가는 수 백 명 환자 중에 한 명일지라도. 그 눈 빛에서 안타까움과 답답한 고구마를 먹은 심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 내가 죽어도 의사 선생님은 내가 왜 죽었는지 알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의사 선생님은 늘 내 편이었다. 내가 진료실에 앉아있는 순간만큼은.
결국 기다리던 검사결과전화는 금요일을 지나 토요일을 지나 일 월 화 수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입원하긴 그렇다. 나는 그 며칠을 입을 다물고 살았다. 병명을 기다리며... 입원하기 위해.... 성과는 없었다. 아마 다음 달 진료일까지 입원하기는 글렀으므로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여자로 살기로 했다.
아, 그리고 할머니로 살기로 했다.
며칠 전 드라마를 보는데 남주가 너무나 어리고 여주가 참 연기를 잘하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온전히 드라마로 해석하고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옆에서 시덥지 않은 소리를 짓거렸다.
“ 저 여자랑 저 남자는 너무 나이차이가 많이나.” 라길래 “당신이랑 나도 7살 차이 나는데? 무슨 재들은 좋겠다 남주가 완전 연하네... ”했더니, 돌아온다는 소리는 “ 넌 할머니가 아직도 저런 애들이 좋냐?”
그 후로 거울에 슬쩍 비친 내 모습이 정말 할머니처럼 보이는 건 진짜일까 거울의 왜곡일까....
오늘같이 날씨가 후덥지근한 여름, 핸드폰에서는 폭염주의보 문자가 온다. 몸이 아파서인지 겨울이라면 찜질방에서 뜨거운 찜질을 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집에 있는다. 동네 친한 언니의 말로는 남편이 본인을 위하여 소나무 황토 찜질방을 마련해 두었다며 본인만을 위한 찜질방이라는 걸 자랑 아닌 자랑삼아 나에게 사진으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만 원내고 들어가는 찜질방에서 뜨거운 꽃탕(너무나 뜨거워 살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곳)에나 들어가 앉아 있으면 그만인데, 그곳에 갈 만한 여유도 마음의 힘도 기운도 없어서 집에 있는다. 기운이 너무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다. 할머니라고 했던 남편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시어머니에게 받아온 고기를 구워준다고 했다. "구워줄까? 구워줄까? 지금 구워? 씻고 나오면 구울까?" 아니 굽지 마. 안 먹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본인이 사 온 고기도 아닌 그 삼겹살을 목살구울까 삼겹살 구울까 몇 번을 말해야 구울까... 그냥 본인 집 냉장고에 고기가 있으니 먹어라 하는 말이구나.. 그제야 깨닫는다. 몸이 안 좋으니 그냥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일단 씻는다. 아침 해가 밝았으므로 그래도 하루에 일과 중 제일 먼저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샤워를 한 다음 아주 향기가 좋은 당근마켓에서 산 바이레도 로션을 처바른다. 이 로션을 바르면 내가 마치 좀 잘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마음이 텅 비어있으니, 외적인 것으로 나를 채웠다.
할머니라고 한 남편의 말 이후부터 내 몸에서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할머니라고 다 냄새가 난다는 건 아니다. 서울에 사는 외갓집에 명절이면 가던 날, 외할머니를 껴안을 때 냄새는 맛있는 음식냄새와 할머니의 인자함이 섞인 할머니향기라 아직도 코 끝에 생생하게 좋은 기억인데. 할머니라고 부른 다음 날부터 그 향기는 흉한 냄새로 바뀌어 내 코끝에 남아 자꾸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계속계속 로션을 바른다. 발라도 나한테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자꾸 팔을 들어 겨드랑이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씻고 바이레도를 바르거 샘플향수를 칙뿌린다. 그것 만으론 부족했다. 사람의 말이란 참 무서운 거구나.. 이렇게 중년의 여자는 할머니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일, 아이 대입 관련 강의가 예정되어 있어 주말이라 겸사겸사 부모 둘 다 신청 가능하냐 전화해서 여쭤보니 교육청 측에서 아이의 아빠일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나는 흔쾌히 돌아온 대답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야, 토요일에 일정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라는 뜬금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일 유튜브 스타크래프트 당구, 요즘엔 올림픽 보느라 바쁜 줄은 알고 있었으나,,,, 그게 아닌가 싶어 “애 방학인데 5만 원이 전 재산이라길래, 어디 가기도 모 하고 돈도 없고 해서, 애 교육청 수업이라도 들으면서 셋이 같이 교육 듣고 밥이라도 한 끼 먹으면서 같이 얘기하고 오려고 했지,”라고 했더니 “아니, 먼저 나한테 시간 있냐고 물어보고 교육청에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니야? “ 라며 억지 아닌 억지를 또 시작했다.
나는 설명해 줬다. “자 봐봐, 교육청이 커? 오빠가 커? 교육청에 먼저 물어봐서 된 다해야 오빠한테 물어볼 거 아냐?" (맨날 유튜브 보면서 낄낄거리던 인간이 갑자기 지 바쁘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지만 말해줬다. 뭐가 더 먼저인지에 대해. )라고 말하니, 그래도 “내가 된 다해야 교육청에 물어보는 게 순서지“라며 떼 아닌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건 뭐 때 쓰는 수준이 투정도 아니고 자기한테 먼저 안 물아봤다고 하는 배불뚝이에 대머리에 군데군데 흰머리 영감이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낚싯바늘로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 진짜 너무 싫어. 교육청에 먼저 말하고 오케이 해야 본인이 갈지 말지 결정하는 상황에 자기의 의중을 묻지 않았다고 말하는 본새가 덜 떨어진 사람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애 교육에 그리 관심이 없는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원래부터 책 한 권 안 읽는 저 새끼를 보면서 멍청한 새끼로 치부해왔었던것도 사실이다. 이미 난 원래부터 이 사람을 무시하고 있었던 게 맞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별 볼 일 없는 한심한 사람으로 내가 생각하는 걸 ….!! 딱 걸렸지만 시치미는 딱 떼는 걸로 하고,,, “미친놈 같은 병신새끼“라는 말을 해버렸다. “사실 호칭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 미안, 미친놈, 병신새끼, 개시끼, 씨발새끼, 멍청한 새끼, 그중에 하나야,, 그리고 오빠는 무슨 오빠, 오빠 같지도 않아, 7살 많은데 좋은 게 하나도 없는 실속 없는 너 같은 인간은 줘도 안 갖는 할아버지일 뿐이야. 그러니 미친놈, 병신새끼, 개새끼, 씨발새끼, 멍청한 새끼 중에 하나인 너랑 이혼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이건 극단적으로 말한 게 아닌 본심이 입에서 술술 나왔다.
그랬더니 “무릎 끓고 욕한 거 사과해”라고 했다. 바로 무릎 꿇었다. ”미안에 진짜 사과할게, 근데 이혼해 줘, 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혼해야지 다 늙어서 이혼하면 뭐 할 거야!! 지금도 할머니라며??, 그니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혼해 줘, 내가 귀찮아서, 아님 부모님 생각해서 등등 얽히고 설인게 많으니까 참은 건데, 내 시간이 넘. 아까워 그래 이혼해 줘! “ 했더니 본인도 갑작스러운 말이라 생각했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해 본다고 했다. 이 집에 이혼은 늘 상주해있는 하나의 안보이는 모양새가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혼이라는 애는 공기중에 늘 함께했다.
하루의 시간을 주고...
다음날, 생각해 봤냐고 물어봤더니,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해? 됐다고 해, "라고 말했다.
나는 무릎은 왜 꿇었으며, 애원은 왜 했으며, 반복되는 패턴에 또 똑같이 행동하는 내가 역겨웠다.
병신 같은 여자, 이 여자는 뭘 또 같이하려다가 이런 꼴을 당한 걸까....
이혼할 생각은 있고?.....
한심한 여자인 게 분명하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