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보고 난 생각
처벌받지 않으면 괜찮다는 논리가 퍼지는 시대. 대장동 50억이 드러낸 사법 불신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는지를 직시한다.
"능력이 좋아서 50억 퇴직금을 받은 거 아닌가요. 당신은 그 나이에 뭘 했나요?"
이 말에 반박할 수 있는가.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쉽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렇게 배웠다. 법을 지키면 된다고. 정직하게 살면 된다고. 하지만 지금 이 사회는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처벌받지 않으면 괜찮다는 논리. 이 논리는 점점 반박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대장동 사건이 5년을 끌었다. 검찰은 두 번 기소했고, 법원은 두 번 모두 검찰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공소기각, 무죄. 2026년 3월,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부터 묶여 있던 계좌 동결마저 해제했다. 재판부는 "4년이 넘었음에도 불이익을 정당화할 사유 소명이 없다"라고 밝혔다. 50억은 이제 처분할 수 있는 돈이 됐다.
월급 200~300만 원을 받으며 수년을 일하면 퇴직금이 얼마인가. 50억이 아니라는 건 안다. 법원조차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범죄는 아니라고 했다. 이례적이지만 합법. 상식 밖이지만 처벌 불가. 이 문장이 사람들의 가슴에 박혔다.
성실함이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 정직함이 어리석음으로 보이는 현실. 그 자괴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집단적 상처다.
신뢰의 붕괴는 순서가 있다. 검찰 불신이 쌓이면 법원을 의심하고, 이내 국회를 향한다. 이런 법을 왜 방치했느냐고.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법과 입법이 함께 신뢰를 잃으면, 사람들은 강력한 누군가를 원하게 된다. 절차 없이 결론을 내려줄 강한 지도자. 역사는 이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미 보여준 바 있다. 파시즘은 언제나 제도의 실패 위에서 자랐다. 만인에게 평등한 법 대신 우리에게만 유리한 질서를 원하는 사회, 그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불행해진다.
단종은 세조에 의해 합법적으로 처벌받았다. 절차도 있었고, 명분도 있었다. 그러나 6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그 사건을 억울하다고 기억한다.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됐을 때, 상식이 먼저 무너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6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보다 더 나아진 점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50억 퇴직금 사건도 법정에서는 끝났다. 무죄. 계좌 해제.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훗날 역사는 이 시대를 이렇게 기록할지 모른다. 법은 살아 있었지만, 정의는 작동하지 않았던 기형적 사회라고.
검찰은 이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다.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고, 법원은 "공소권 남용"이라고 지탄했다. 사람들이 잃은 건 재판 결과가 아니라, 국가 기관에 기댈 수 있다는 믿음이다.
50억의 행방보다, 이 사회가 보내는 메시지가 더 위험하다. 패배감이 냉소가 되고, 냉소가 분노가 되고, 분노가 제도 전체를 향하는 사회.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그 대가는 우리 모두가 치른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다. 그 최소한마저 흔들릴 때, 사회는 어디서 중심을 잡는가.
이 글의 출발이 된 기사들
조세일보 https://www.joseilbo.com/news/htmls/2026/03/20260310564299.html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48440.html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