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
넌 다 좋은데 끝까지 하는 독한 맛이 없어
엄마는 내 성적을 보면 자주 이렇게 말했다.
"넌, 다 좋은데 독한 맛이 없어. 끝까지 독하게 하면 더 잘할 텐데..."
유년기 내내 근성이 부족한 이미지가 나를 김 빠진 콜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평균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항상 아쉬운 내색을 비쳤다. 아무래도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동생보다 잘하기는 힘들다고 결론을 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가 동생보다 휴게실에 가는 횟수가 많았고,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도 많았고, 공부가 안된다며 집에 일찍 가는 횟수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친구와 어울리느라 공부를 덜 한 건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친구와 어울린 건지는 모르겠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겠지만) 하지만 부모님은 끝까지 나의 '물러 터진' 근성을 운운하시며 내 성적표에 입맛을 다시곤 했다. 선생님들도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끝까지 혼자 풀어내야 자기 문제가 된다고 했는데, 난 모르면 거의 뒤에 해답 풀이를 신속하게 보고 넘어갔다. 난 끝판왕, 끝장, 근성, 독한 맛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서른 중반이 막 넘은 나이에도 나는 여전하다. 끝까지 해내는 독한 맛은커녕 잠깐 활활 타오르다 피시식 꺼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중이다. 재작년 여름에는 수납에 갑자기 꽂혀서 각종 수납 관련 서적을 읽고, 수납장을 사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수납과 정리를 하던 과거 나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그때 해놓은 정리 상태로 지금까지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작년 초반에는 미드에 홀딱 빠져 한 작품을 다 보면 금단현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새로운 미드가 절실했다. 신랑의 그때의 나를 기억하곤 요즘 '데어데블'을 들이밀고 있으나 영 관심이 안 생긴다. 작년 겨울부터 초까지는 북유럽 인테리어에 꽂혀서 집안에 있는 가구에 페인트 칠을 하고, 새벽 3시에 책장 4개를 옮기는 생 난리 부르스를 떨었다.(그 당시 신랑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각 방의 가구 구조가 다 바뀌어더라는 말을 주변 사람에게 심심치 않게 했다) 그때 북유럽 소품을 좀 놔줘야 구색을 갖춘다며 자잘하게 돈도 많이도 썼다.(북유럽 선반들, 작은 서랍장, 각종 북유럽 소품들.. 내 돈...) 요즘 근황을 말할 것 같으면, (눈치챘다시피) 글쓰기에 맹진하고 있다. (끝까지 할 겁니다. 할 수 있다... 구... 여.......ㅠㅠ)
나도 나름 '능력자'
저번 주 토요일 직장과 관련돼 세미나를 다녀왔다. 그리고 요즘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내 마음에 일에 대한 의욕이 오랜만에 샘솟았다. (에혀. 나란 인간...) 정말 직장 내 모든 문제점을 한 번에 싹 다 갈아엎을 것 같은 사기가 내 안에 차오른 것이다.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같이 참석했던 한복 아가씨에게 쉬지 않고 열변을 토하다 목이 쉬어버렸다. 그녀는 가뜩이나 피곤한데 남자 친구와 카톡 하랴 내 이야기에 끄덕여주랴 정신이 없는 듯했다.
요즘 '능력자'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각 분야에서 끝판왕을 찍은 사람들이 나온다. 종이로 로봇을 접는 능력자, 인도를 너무나 사랑하는 능력자, 수중생물 기르는 능력자 등등.. 한 분야에 저렇게 매진할 수 있다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겐 참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갖다 붙이자면 나도 나름 '능력자'이다. '최단기간에 뭔가에 확 꽂혀 열심히 하다 곧 의욕을 잃어버리는 능력자' 뭐 주기별로 다양하게 접해서 나름 조금씩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어차피 끝까지 못할 것이라며 아무것도 안 해보는 것보다야 이것저것 하는 게 더 낫다.
그저 그 '의욕'이란 분이 오셨을 때,
의심 없이 내 온몸을 맡겨주는 것도 나쁘지않다.
나이가 들며 깨닫게 된 지혜다.
작심삼일도 반복하면 365일이 가능한 법이니까.
이쯤 되면 합리화의 끝판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