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9.
낯선 감정을 만났던 기억들
나는 이상하게도 유치원 다닐 때의 기억이 무척이나 선명하다. 분명 겨울이었다. 연탄을 때는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가장 따뜻한 안방에서 가족들이 모두 요를 깔고 자곤 했다. 뜨끈해진 등에 너무 두꺼운 이불을 덮어 잠에서 깼나 보다. 어? 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 엄마 아빠가 TV를 보시는 듯했다. 나는 자는 척 슬쩍 몸을 TV 쪽으로 돌려 본다. 그냥 궁금했던 건지, 자세가 불편했던 건지는 확실히 모른다.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들어온 영상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얇디얇은 모시(?) 한복을 입은 여자가 옷을 벗고 있었다.(심지어 그 옷은 젖어 있었다) 무척 튼튼해 보이고 수염을 잘 안 깎은 아저씨가 땀을 흘리며 벗겨주고 있었다. 둘은 갑자기 껴안더니... 껴안더니... 그때였다.
"oo아. 너 자라."
아빠의 단호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화살처럼 내 등에 꽂혔고, 내 목덜미는 딱딱하게 굳었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미동도 못하고 눈만 질끈 감고 잠들어야 했던 기억. 그때의 생경하고 야릇한 기분은 아직 내 모세혈관에 저장되어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유행했던 '산딸기' 같은 한국 정통 애로물 이었던 듯)
남다른 교육방식을 갖고 있다 자부하시는 우리 아빠는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우리에게 참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맥가이버'와 같은 그 당시 외국 방화물부터 007 시리즈처럼 할리우드 액션물까지 장르와 시청 연령에 제한이 없었다. 그 당시 '전설의 고향'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지금처럼 시청률 같은 건 몰랐지만, 그건 동네 개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씻고 잘 준비를 하고 가족이 안방에 모두 모여 옹기종기 앉아 '전설의 고향'을 기다렸다. 친절하신 아저씨의 내레이션이 시작되면 우리는 오늘 어떤 귀신이 나올지 궁금해하며 숨을 죽였다. 어깨와 등이 움츠러들고 침이 꼴깍 넘어갈 때쯤 아빠는 큰소리로 "으잇!"하며 우리의 등을 툭 건들여 놀래키곤 낄낄 거렸다. 우리는 아빠가 그럴 것을 은연중에 알면서도 매번 거의 기절 직전 상태가 되었다. 그 이후로도 '전설의 고향'은 많이 리메이크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오래된 화면과 투박한 등장인물들의 외모가 버무려 내는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는 없어졌다. (리메이크된 작품은 화면이 너무 깔끔하고, 등장인물도 너무 세련된 것이 흠)
그 옛날 자다 깨서 본
젖은 한복의 속살처럼
모처럼 미술관에 갔더니 프랑스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뉴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레티나 :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타이틀로 디지털 영상이나, 광섬유와 같은 소재로 새롭게 시도된 작품이 많았다. 앞서간 아이들이 '엄마 엄청 무서운데 있어' 하며 손을 끈다. 긴 의자 두 개 정도 들어간 컴컴하고 작은 시청각실이다. 그리고 흑백영화가 한창 상영 중이다. 제목은'지난해 마리 앙바드에서', 꽤 오래된 영화처럼 보인다.
크고 오래된 바로크풍의 호텔 건물, 깃털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여자. 기다림에 지쳤다고 호소하는 2명의 남자.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여자의 비명소리. 내용은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등장인물이 하는 소리는 앞뒤 맥락도 없이 허공을 떠돈다. 무슨 영화가 이래 싶었다. 그런데 그 괴기스러운 영상의 느낌이 끌렸다. 응당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이라도 바로 튀어나와야 할 분위기는 끝까지 나를 휘감았다. 오래된 필름의 거친 질감, 그리고 암호처럼 느껴지는 등장인물의 대사, 그리고 몽롱해 보이는 등장인물의 눈빛... 참 낯설고 묘했다.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나면 부쩍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그 옛날 자다께서 영화를 볼 때에도 그랬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을 볼 때도 손에 땀은 났지만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오늘 미술관에서 새로운 느낌을 만져준 프랑스 영화도 물론이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좋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잘 울거나, 별거 아닌 일로 흥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미식가처럼 감정을 섬세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사람들일 듯) 받아들이는 채널이 다양한 사람은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넓다고 믿는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그냥 이상해서 싫다고 하는 사람보다, 그 영화가 주는 새로운 색깔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과 수다를 떨고 싶다.
그 옛날 자다 깨서 본 젖은 한복의 속 살처럼,
말캉말캉하고 보드라운 감수성을 갖고 싶다.
감정의 빛깔이 점점 단조로워지면,
그땐 진짜 늙기 시작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