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 21.
여인은 아기를 어떻게 살릴까?
험준한 산길을 헤치며 한 여인이 급박하게 쫓긴다. 어두컴컴한 산길은 척척하고 음산하다. 여인의 품에는 아직 피부가 쭈글쭈글한 아기가 있다. 맙소사, 뒤에서 여인을 쫒는 덩치 큰 군인 둘은 무시무시한 칼을 들고 두리번거린다. 갑자기 잠시 숨어있던 여인이 느린 동작으로 어디선가 나타난다. 아기를 안고 커다란 칼을 날렵하게 휘두르며 두 군인을 시원하게 처치한다. 흰자가 유독 많이 보이는 여인의 눈빛에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아이를 안고 급하게 물살이 거친 강을 건너던 중 여인은 발을 헛디딘다. 급물살에 쓸려 내려가는 여인과 아기, 긴박한 순간이다. 한 손으로 다급하게 아기를 부여잡고 반대쪽 손으로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가까스로 잡았다. 하지만 저만치 엄청난 물이 덮쳐오는 것을 본 여인. 그녀는 자신의 명이 다했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아기는 꼭 살려야 한다. 하지만 주위에 도와줄 사람도, 잡을 나무나 바위도 없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
'여인은 이 아기를 어떻게 살릴까?'
처음 본 인도영화 '바후발리'
위 상황은 며칠 푹 빠져서 본 '바후발리'라는 인도 영화의 첫번째 씬이다. 엊그제 일기를 쓰는데 신랑의 노트북에서 나는 소리가 참 거슬렸다. 간드러지다 못해 야리야리한 목소리와 낯선 리듬은 평소에 듣던 것이 아니다. 신랑이 계속 쿡쿡 웃는다. '여보 대체 뭘 보는 거야?' 하고 노트북을 내 쪽으로 돌렸다. 몸이 좋은 한 인도 남자가 폭포수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뭐 이런 걸 봐..."
그렇게 말하면서 괜히 궁금해졌다. 남자 주인공은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던 팻 제로 근육남이 아니다. 샤프한 캡틴 아메리카보다는 사극에 나오는 듬직한 장수 느낌이다. 게다가 곱슬곱슬 장발에 인도인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 게다가 숱 많은 콧수염까지 아주 일품이다.(반어법입니다) 카레에 마가린을 듬뿍 비벼먹을 것 같은 남자 주인공의 대사는 서슴없다. '난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나 봐'는 기본이다. '백번이라도 당신을 위해 태어나겠어요'라는 사랑고백에 방정맞고 느끼한 춤까지 선보여준다. 할리우드에서 보던 어떤 남자 주인공의 시크함이라던가 도시적인 세련 맛은 전혀 없다. 대신 남자는 튀어나올 것 같은 눈알을 굴려가며 가식 없이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헉, 이건 뭐지?'하다 결국 이 영화에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엔 황당한 코미디적인 요소에 끌렸지만 중간부터는 영화가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매드 맥스', '글레디에이터'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이래서 '발리우드'이라는 건가? 인도어의 어감이 주는 이국적인 전투씬이나 입체적인 캐릭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어찌나 신선한지. 짝사랑하는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여자의 몸에다 몰래 물감으로 예쁜 그림을 그리고 도망치는 근육남이란... (어쩐지 쏠리는 것 같기도 하다. 신선함과 취향은 별개의 문제)
원래 조금씩 나누어서 보려고 했는데, 전투씬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다 보고 말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혹시 지금까지 내 글을 읽고 이 영화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꼭 말리고 싶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바후 발리-더 비기닝'이다. 즉, 끝난 게 아니다. 완결 편은 내년 4월에 나온다. 내가 조금이라도 사전 지식이 있었다면 마음에 준비를 좀 했을 텐데. 갑자기 중간에 확 끊겨버리니 허무하다.
익살스러운 상상의 향연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여인이 안고 있던 아기는 예상했다시피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면 여인은 어떻게 그 엄청난 급물살에서 아기를 살렸을까? 다음 장면은 이렇다. 여인은 하늘을 보며 이 아이는 왕이 될 운명이니 꼭 살아야 한다고 비장하게 외친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아이를 위로 쳐들어 올린다. 여인은 물에 꼴까닥 잠기는데, 꼿꼿한 팔은 끝까지 손으로 아이를 떠 받치고 있다. 여자는 물속에서 죽었으니 팔에 힘이 풀려야 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은 하지 마시길. 그런 케케묵은 사실적 논리는 익살스러운 상상의 향연을 펼치는 인도 영화를 보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쉽게 접했던 할리우드 영화가 더 비현실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