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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n 30. 2016

신랑 카톡 창의 '질리는 그 여자'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서 가끔 신랑한테 카톡으로 링크를 걸어줄 때가 있다.


"오빠, 한번 봐. 오늘 좀 신경 썼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 글을 보내줄 때의 내 상태를 돌이켜 보면,


무척 내 글에 대해 자아도취에 빠져있거나 (스티븐 킹은 글을 쓴 직후에 자기 글을 읽으면 누구나 자기가 천재라고 착각한다고 했다),

신랑을 주제로 써서 혹시 기분이 나쁠까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라던가, (살림 9단은 아니지만 눈치는 9단)

아니면 글이 별로 인 것 같은데 '그렇게 나쁘진 않다'라는 위안을 받고 싶어서인 경우다. (가장 안 좋은 케이스)


문제는 신랑 근무시간에 보냈을 때이다.

카톡 메시지의 작은 '1'이 빨리 안 없어진다.

바빠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슬슬 안달이 나기 시작하는 거다.


가끔 링크를 보내자마자 '1'이 없어질 때가 있다.

배려심 깊은 아내로서 읽는 시간을 감안해 10분 뒤에 물어본다.


"읽어 봤어? 어때?"


"어, 근데 나 지금 바빠서 이따 읽을게"


"(헐~ 아직 안 읽었어?) 바쁘구나, 알았어 (에잇~ 언제 읽을 거야)"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알지 못했다, 왜 내 글을 당장 못 읽는지는.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무슨 소설을 쓴 것도 아니고 잠깐 5분도 시간을 못 내나 싶어 내심 야속하다. 그래도 이런 걸로 괜히 투정 부리면 속 좁아 보일 것 같고, 다음에 내 글 읽어달라고 할 때 싫어할까 싶어 참는다. 참고 또 참다 몇 시간 뒤에 다시 물어본다.(쓰고 보니 정말 나 피곤한 여자. 이 글을 읽는 남편분들은 지금의 아내분께 고마워하시길)


그날도 그랬다.

출근 전에 신랑에게 어제 밤에 올린 글을 읽어보라고 말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던 아주 흔하고 일상적인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볼일이 있어 신랑이 일하는 방에 갔다.

신랑이 화장실에 잠깐 간 틈을 타서 키보드에 엔터를 눌렀다.

화면보호기가 없어지고 화면이 환해진다.

윈도는 5개의 창이 열려있고 모두 업무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화면 구석 카톡 대화창에 빨간색 메시지 알람이 많이 보인다.


스터디 일정 안내 ,

세무사의 자료 요청 메시지,

세미나 자료 및 준비 사항들,

모임에 회칙 및 장부 (신랑이 총무임)

....

메시지 개수가 적힌 빨간 동그라미가 셀 수 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익숙한 하나가 눈에 띈다.


"읽어봤어?"


내가 보낸 메시지다.

신랑의 카톡창으로 읽은 내 메시지들이 죄다 낯설다.

그의 자리에 앉아서 본 나의 모습에 왠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가 이렇게 질리는 여자였나'


설렘이 없는 사랑이니 뭐니 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인드부터 필터 교환 좀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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