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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l 13. 2016

'을', '갑'이 되다!

2016.7.12.



나는 항상 '을' 이었다.


  돌이켜 보면 난 항상 '을' 이었다.  첫 직장에서 선배들 앞에서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하고 첫인사를 건네었을 때에도,  '결제를 바랍니다' 파일에 막 출력된 문서를 끼우면서도 오타가 없는지 초조하게 눈을 부릅떴다. 혹시 실수할 까 봐, 내가 모르는 게 있을까 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와 다른 부서에 골드미스(?)였던 그녀를 모두 '지혜 씨'하고 부르곤 했다. 이제 막 2년 차였던 나도 질세라 '지혜 씨'하고 불렀다. 선배님들이 쓰는 호칭을 그냥 따라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다들  누구누구 씨 하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진 탓도 있다. 나보다 무려 8살이나 많은 그녀를 '지혜 씨'라고 부른 지 한 반년이 지났을까. 지혜 씨가 '보자보자 했더니 정말 이년이! '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저기, 자꾸 지혜 씨라고 하는데, 어리신 분들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든요?"


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사실 그 시점은 그녀가 '괜찮은 총각'이 있다며 주선해 준 소개팅을 한 바로 다음 주였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소개팅이 그렇듯 'Oh, Destiny~'와 같은 일은 없었기에 따로 약속을 잡지는 않았다. 그 '괜찮은 총각'은 소개팅 장소에서 알았지만 그녀의 친 남동생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자기를 '~씨'라고 불러도 그냥 귀엽게 봐준 '지혜 씨'가 갑자기 그 일 이후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싹 바뀌자 한동안 불편하고 미안했다. (자업자득. 지금 나에게 어린 후배가 그러면 족을 칠 것임. 암~. 지혜 선생님 그땐 정말 죄송합니다)




잠깐 '갑'이 었던 시절도 있긴 했다


  '을'의 인생에도 잠깐 볕 든 날이 있긴 있었다. 바로 신랑과의 연애기간이다. 결혼 전 커피숍에서 내가 한창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을 했다. 하찮아진 기분이 들며 기분이 상했다. 설명도 없이 핸드백을 집어 들고나가는 그 순간 난 분명 '갑'이었다. 한 달 동안의 해외연수를 가게 되었을 때, 그가 내 손에 자기를 잊지 말라며 금반지를 끼워줄 때에도 그랬다.


'그래, 널 잊지 않도록 이 반지는 받아줄게'


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지만, 나의 태도와 마음은 '갑'이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얻은 '허니문 베이비' 챕터부터 나의 '을'의 길이 열렸다. 겨우 먹은 비스킷 한 조각도 변기에 다 게워내었다고 해서 내 일이 줄어들리 없었다. 직장에서 '입덧''이라는 것은 면죄부가 절대 될 수 없으니까.  포도당 링거를 맞아가며 아슬아슬하게 일을 할 때에도 이리저리 눈치를 봤다. 너무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오히려 남자 상사보다 여자 상사 눈치가 더 보였다. 아이는 나만 나는 것도 아니고, 그들 중 몇 명은 입덧도 해봤고, 또 아이도 한 두 명씩 다들 키우고 있었으니까. 직장에서도 엄마로서도 제 몫을 해내는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진국 물로 줄줄 흐르던 '을'. 그게 바로 나였다.




인생사 새옹지마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 ' 여자 인생은 뒤웅박 팔자'라더니, 지금 나는 '갑'이 되었다. 그 이유는 결혼할 때 월급쟁이였던 신랑이 아주 작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졸지에 '사모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핏덩이였던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둘 다 기관에 보내면서 신랑을 도와주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직원이 딱 4명뿐인 그곳에서 만큼은 나는 '갑'이다.


처음 신랑을 도우러 일을 나갔을 때엔 '갑'에 대한 감이 없어 고전했다.('갑'인적이 있어 봤어야지 원) 일하는 직원이 고작 4명이니까 단란한 가족적인 분위기로 따뜻하게 대하고 싶었다. 나도 일을 배우는 거니까 '잘 부탁드린다고' 겸손하게 직원들에게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쏘면서 팀워크를 다져보려고 했다. 어쩌면 나는 '을'이 었을 때 바라던 사람 좋은 '갑'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절정에 달았을 때에는 직원들에게 이유도 없이 한우 세트를 돌려 깜짝 선물을 했다. 그렇게 하면 감동해서 직원들이 신랑의 직장에서 더 충성을 다해줄 것만 같았다. 마치 내가 명절 때마다 상사에게 선물을 사다 바친 그 마음처럼. '잘 부탁해'와 같은 습관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다시피 조직을 이끄는 카리스마도, 원칙도 없는 내가 보인 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그들에게 나는 사람은 좋은데 좀 오버하는 아줌마일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갑작스러운 나의 호의가 사실 당황스러웠을 거다. 아직 일도 잘 파악 못했으면서 도와준답시고 동분서주하는 내 모습에 얼굴을 화끈거린다.


  때로는 무척 외로웠다. 서로 상의하면서 일을 해결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내가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뭔가 곤란한 표정부터 나왔다. 내 아이디어가 별로일 수도 있고 변화가 싫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대등한 입장이 아니고는 토론이 쉽지 않았다. 직원들 가운데에서 불청객이 된 기분이 들때면 일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시간보다 20분만 늦게 가도 '어디야, 왜 안와?' 하고 나를 찾는 신랑 때문에 그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작은 개인사업을 근근이 꾸리는 사람들은 알 거다. 사업을 시작할 때 지게 된 어마어마한 빚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 빚다 언제 갚나. 에혀) 사업을 일으키고 싶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내 자식을 위해서 무조건 잘 돼야 했다. 마음속으로 이마에 흰색 '필승' 띠를 묶었다. 그래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메인은 신랑이 해야 하고 내가 하는 일의 종류는 그냥 거드는 일이었다.


   처음 시작한 것은 수십 명씩 손님 드나드는 곳의 분위기를 좀 더 전문적으로 정비하는 거였다. 그래서 '갑'은 결심한다. 그래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그냥 카리스마 있게 나가자. 업무 규칙을 정해서 기강을 잡자. 쉬는 시간에는 낮잠을 자든 간식을 먹든 상관없지만 손님이 있을 때만큼은 집중해주길 바랬다.  더 이상 눈치를 보지 말자. 이러나저러나 내가 좀 불편하다면  권위 없이 무시당하는 쪽보다, 할 말 따박 따박 해대는 재수 없는 X가 되는 것이 차라리 그들의 팀워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내 욕을 하는 순간만큼은 서로 똘똘 뭉칠 거다) 실수를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은 '을'끼리 하도록 해도 된다. 나는 실수를 지적하고 고치도록 알려줘야 한다. 나는 입맛이 쓰겠지만 결국 득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단단하게 맘을 다지고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1년 동안의 '갑'질의 결과


  1년 동안 직원도 많이 바뀌고, 조직 분위기도 달라졌다. 아주 사소한 것만 말하자면 직원들이 일하면서 휴대폰을 수시로 보는 것도 개선했다. (아웃백에 갔는데 직원이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수시로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기 마련)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한 단락 이상이 되는 내용을 지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글이 혹시라도 그들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사적인 영역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다 쓰려면 시리즈 연재해야 함)

  

그러고 보니 10년 전에 동료와 씹어대던 누군가가 된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지만, 다시 과거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랑의 사업은 1년 전보다 훨씬 더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훨씬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직원과도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고, 탐탁지 않은 직원도 좀 더 지켜보려는 인내심도 생겼다. 게다가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마음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면 밤에 잠 못 잔다) 새로 직원을 뽑을 때에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딱 중간 정도의 기대치만 갖는다. 언제 그만둔다고 해도 담담하게 '그래 알겠다'라고 말할 정도만 '정'을 준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는지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는 때로는 매정하기도 하고 참 가증스럽기도 하다. 예전의 나를 떠올리면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낯선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갑'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길이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눈치 보는 '을'보다는 뻔뻔한 '갑'이 더 좋다. 복직해 '을'의 감을 잃어 허우적거리는 내가 떠올랐다.  내년에 복직을 하면 연극이 끝난 것처럼 이 가면은 조용히 벗어던져야 한다. 어찌 되었든 복직 전까지는 나는 오늘과 같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나고 나면 이것도 '을'의 추억이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제 글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끼신 분이 계실까 싶어 몇 자 적어요.

부부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일하시는 독자님들은 '헉' 하실 수도 있어요.

저도 어차피 '을'이 될 운명이니 너무 불편해하지 마시고

'갑'의 입장을 이해하는 정도의 글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실상을 보시면 아직도 고군분투하는 '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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