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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l 24. 2016

아는 사람이 하는 미용실

2016.7.23.




아는 사람이 하는 미용실에 처음 가봤다


오전에 잠깐 짬이 생겨 미용실에 갔다. 원래 다니던 미용실은 좀 거리가 있어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갔다. 어차피 파마나 뿌리 염색을 할 시간은 안되고 머리 길이만 좀 다듬을 거니까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간 미용실은 신랑 직장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곳이다. 예전에 딸아이 머리를 자른 적이 한번 있었다. 야무지게 생긴 미용실 원장님은 가끔 출근하면서도 마주치면 가벼운 대화도 나누는 사이라서 들어가자마자 깍듯이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어, 어쩐 일이세요?"               


"아, 저 머리 좀 다듬으려고요"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



  머리를 다듬어 주기 시작하며 원장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애들은 많이 컸는지, 이제 몇 살인지, 그러면 나도 질세라 '원장님은 딸 하나 이시던가요?' 하며 되물어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애들은 정말 금방 큰다'는 주제에서 여름휴가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휴가는 언제인지,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여행 계획을 듣고 서로의 여행지가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는 공감도 덧붙였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 주면 어린이집 방학인데 아이는 어디에 맡기고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한참을 얘기했다. 워킹맘으로서 서로 비슷한 처지라 더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내 속사정은 좀 달랐다. 사실 나는 오늘 갑자기 만 명을 넘어버린 브런치 방문객 수의 출처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미용 가운 아래로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몇 주 전에 썼던 글 하나를 한 시간 단위로 1000명이 보고 있으니 분명 어딘가에 글이 게시된 것이 틀림없었다. 카카오 채널이든, 다음이든 한번 훑어보고 싶었다. 미용사가 아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신경을 안 써도 될 텐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머리도 다 자르고 숱까지 꼼꼼하게 쳐낸다음에 끝났나 싶었건만, 친절하신 원장님께서는 내 머리를 보면서 평소 웨이브를 넣어주고 싶었다 하셨다. 손님이 많아 바쁘신 와중에도 고데기로 정성껏 컬을 정성껏 말아주셨다.         



아는 사람이라서 불편하다

      

  가끔씩은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불편할 때가 있다.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게 더 잘해주려고 하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 피곤해지는 건 나의 성격 때문일까. 평소에 머리 하면서 조용히 잡지를 즐겨보는 나로선 머리 자르는 내내 나눴던 대화가 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여기 커트는 얼마예요?'라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깟 커트 비용을 세세하게 따지는 좀스런 사람으로 혹시 비칠까 싶어서이다. 그러고 보면 미용실은 가격이 참으로 두루뭉술하고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아름다움에 신경 쓰는 네가 가격 따위에 그렇게 연연해서 되겠니?'라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머리를 하고나면 환불이 불가하니 미용 가운을 입은 이상 머리 스타일의 결과나 가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원장님께서 한올 한올 고데기로 넣어주신 웨이브는 마음에 들었다. 머리를 감으면 결국 풀어지겠지만 기분 전환 하기엔 충분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도 앞으로는 그저 나를 '아줌마 손님'으로 대하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는 그런 곳 말이다. 가서 밀린 잡지나 실컷 볼 수 있고 원한다면 커피도 두세 번 리필해달라고 해도 미안해 안 해도 되는 그런 곳. 어느 정도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그래서 내가 좀 더 자유로운 그런 미용실이 아무래도 내 체질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그런데 잠깐.      

따지고 보면 원장님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염색이며 파마 손님이 밀려있는 와중에도 '아는 손님'인 나에게 잘 해주기 위해서 고데기를 불사했다.     

무척 정성 들여 말아주며 다음엔 보브컷으로 잘라보라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어쩌면 미용실 원장님이나 나나

둘다 서로 좀 피곤했을지도 모르겠다.



+

원장님 오늘 신경 많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 스타일 하나로 무척 상큼해진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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