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저 여자 좀 봐라. 자세히 보면 입이 삐뚤어져 있어
평소 관상 좀 볼 줄 안다고 자부하시던 아빠였다.
뉴스를 보다가도 흠잡을 때 없는 세련된 여자 아나운서를 단호한 어조로 한방에 '복이 지지리도 없는 여자'로 등극시키곤 했다. 아빠가 말한 티브이 속의 그녀들이 비운의 운명이거나 무조건 잘 살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는데, 예를 들면, '저 여자는 입이 삐뚤어져서 복이 나간다.' '귀가 당나귀 귀 모양으로 참 잘 생겨서 돈이 모인다'는 등 참으로 다양했다. (특히 당나귀 귀 모양을 설명할 때에는 엄마의 귀가 항상 좋은 예가 되었다.)
그리곤 항상 내 남동생에게 저런 여자는 만나면 안 된다고 당부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짓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자 아나운서가 우리 아빠의 관상 취미에 주로 타깃이 되었던 이유는 보통 그녀들은 정면을 오랫동안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다. (유독 여자 관상을 주로 봤다.)
너는 귀가 조금만 이렇게...
나의 관상은 다 좋은데 귀 모양이 살짝 아쉽다고 했다.
(아빠는 이 말을 할 때마다 한 손으로 내 귀를 앞쪽으로 조금 당겨서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기울이며 아쉬운 듯 보곤 했다.) 그 이후로 허영만의 '꼴'이라는 관상 책을 읽고 내 귀가 아쉬운 이유를 조금 납득하게 되었다. 저자는 귀를 꽃으로 비유를 했는데, 꽃이 너무 활짝 핀 모양의 귀보다는 꽃봉오리가 동그랗게 모아져 있어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모양이 좋다고 한다. 거울 속에 내 귀는 너무 활짝 피어서 이제 시들 준비를 할 것 같았다. '이런 게 어떻게 다 맞아' 하고 넘겼지만 씁쓸했다.
사람을 보고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 전 집에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공공기관에서 온 우편물이라 자동차 규정 위반 딱지인가 싶어 멈칫했다. 뜬금없게도 '성범죄자 신상 고지서'였는데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괜히 기분이 찝찝해졌다. 그 고지서에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아동 성추행범의 사진과 주소가 전과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확인했으니까, 한 번은 봤으니까 그냥 버릴까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희생자들이 이런 정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 꼭 당하지 않던가? 왠지 내가 이 고지서를 가볍게 넘기는 것이 어떤 불길한 복선이 될까봐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뼛속 깊은 트리플 A형. 인정합니다)
사진 속의 그 사람은 연세 드신 분들이 보면 잘 생겼다고 할 얼굴을 갖고 있다. 내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외모만으로 적대감을 갖긴 어려울 것 같다. 관상이라는 것이, 인상이라는 것이 살면서 점점 더 아리송해진다.
누구는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하고, 어떤 이는 첫인상이 거의 틀리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확실한 것보다는 불확실한 것들이 더 많아지는데, '사람'이 그렇다. 사람을 보고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면 이런 신상 고지서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가끔 확신에 찬 아빠의 관상론이 가끔 생각난다.
어쩌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진 아빠는 마음속 나침반 같은 것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
관상이 맞든 틀리든 중요한 게 아니다. 처음 보는 상대를 판단할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심적으로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친정집에 가서 아빠와 뉴스를 보고 싶다.
그러다 아빠가 "저 여자는....." 하고 말하기 시작하면 왠지 든든하니 안심될 것 같다.
난 신나게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다.
블로그에 오시면 제가 그동안 써온 글들도 보실 수 있어요.
평범한 아줌마의 소소한 일상의 기록일 뿐이지만,
그래서 당신의 공감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