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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an 07. 2017

'중고나라'에서 신고당할 뻔했다.

2017.1.6.






1월 2일, 그 여자.


'해피콘이 뭐야...'


  그녀의 신랑이 쓰라고 준 모바일 상품권의 이름은 '해피콘 20,000원' 이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그 여자는 '해피콘 사용처'라고 써 넣었다. 엔터를 누르자 검색창에 해피콘으로 파리바게트, 파스꾸찌,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넛 등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이트가 줄줄이 뜬다. 그리 작지 않은 액수를 공짜로 쓸 생각에 기분이 들떴지만,  2만 원을 한꺼번에 다 쓰려면 아무래도 케이크를 사야 될 것 같았다. '이번 달에 생일도 없는데 2만 원 치를 어떻게 다 쓰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에 여자는 누군가 중고나라에서 같은 상품권을 판매한 글을 보게된다.  


  가끔 아이들 전집 따위를 팔곤 하는 그녀가 그럼 이것도 한번 팔아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필요 없는 빵 2만 원어치를 사는 것보다는 현금이 생기는 쪽이 더 좋았다. 그녀는 모바일 상품권의 바코드 아래 숫자를 그리기 어플을 이용해 열심히 지웠다. 중요한 번호를 지웠으니 그녀는 안심하고 그 상품권을 중고나라에 올린다. 너무 비싸게 올리면 안 될 것 같아 파격적으로 20프로나 싸게 올린다. 글을 올리자마자 여자는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향했다.


  한 두세 시간쯤 지났을까, 저녁 준비를 하려는 그녀가 혹시나 확인한 핸드폰에는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모바일 쿠폰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었다. 남자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니 바로 돈이 입금되었다. 앞으로 이런 쿠폰이 있으면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남자의 친절한 문자에 여자는 괜히 좋은 일을 한 기분마저 들었다. 공돈 만 육천 원이 생겼다는 생각에 괜히 으쓱해졌다. 때마침 현관문을 열고 막 퇴근해 들어온 여자의 남편에게 그녀가 말한다.


"여보, 나 오늘 공돈 벌었어. 그 모바일 쿠폰, 팔았다!  잘 했지?"




1월 3일, 그 남자.


  그 날 아침, 남자는 잠결에 살짝 눈을 떴다. 창문의 빛을 가늠해봤다. 그리고 아직 두세 시간은 더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로등 빛이 아직 꺼지지 않은 검은 풍경에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겨울의 아침은 동면에 들어가고 싶은 직장인의 아침과 많이 닮았다. 기미 없이 7시가 넘도록 늦장을 부리다 급하게 밝아지는 모습이 허둥지둥하는 그 남자와 영락없이 닮았다. 8시 전에는 무조건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지각을 면한다는 것은 그의 10년이 다돼가는 통근 생활에 어렴풋이 깨달은 공식이었다. 그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핸드폰 버튼을 눌러 화면을 봤다.


7:20


그에게 7 옆의 20 이란 절망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엔 부족한 숫자였다. 이런 날엔 으레 뜨끈한 물로 세수와 면도만 한다. 스포츠에 가까운 그의 짧은 머리는 이런 다급한 순간 참 유용했다. 그가 왼쪽 턱을 슬쩍 거울 쪽으로 치켜올리고 면도를 하는데 화장실 문이 갑자기 휙 열린다. 그의 아내다.


"여보, 오늘 서현이 어린이집 데려다줄 때 케이크 사가야 되는 거 알지?"


아내는 패딩점퍼의 지퍼고리가 아내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그녀는 한 손에 핸드백을 반대편 손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야무지게 들고 있었다. 남자는 면도날을 귀 옆 볼에서 턱까지 조심스럽게 내리자마자 거울에 비친 아내에게 호기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야, 내가 어제 파리바게트 쿠폰 사놨잖아. 정말 싸게"


"그래? 서현이 겨울왕국 케이크 사고 싶대. 같이 가서 골라"


칭찬을 받고 싶은 남자의 말투와 달리 여자는 무심한 반응이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2만 원짜리 상품권인데, 누가 만 육천 원에 중고나라에 싸게 내놓았더라고"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딸은 정확히 손가락으로  한 케이크를 가리켰다. 케이크 위에서는 허리가 잘록한 '엘사'가 요염하게 치마를 반짝이고 있었다. 남자는 딸바보 미소를 지으며 점원에게 이거 주세요 하며 계산대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자기 등짝보다 더 큰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있던 아이는 계산대에서 아빠의 다소 격앙된 목소리를 듣는다.


"네? 이 쿠폰이 이미 사용된 거라고요?"


"이미 사용한 쿠폰이라고 뜨는데요."


남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평범한 일상의 좋은 아빠에서 별안간 사기를 당한 억울한 피해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어제 퇴근길 아내가 딸 어린이집에 케이크를 사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는 시간도 때울 겸 지하철에서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소셜에 싸게 나온 저렴한 쿠폰은 없는지 검색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 중고나라에 유명 제과점 쿠폰을 아주 저렴하게 올려놓은 것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숫자는 까맣게 안 보이는 바코드 위엔 '해피콘 20,0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남자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재빨리 판매자의 이력을 클릭했다. 보아하니 그 쿠폰을 올려놓은 판매자는 아이들 책과 장난감을 가끔 파는 아내 또래의 여자로 보였다. 그는 바로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아직 쿠폰은 아직 안 팔렸고, 스마트폰으로 재빨리 돈을 송금을 했다. 판매자가 바로 문자로 바코드와 인증번호 숫자가 또렷이 보이는 쿠폰을 보냈다. 남자는 싸게 구입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괜히 뿌듯해졌다. 그래서 "앞으로 또 있으면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친절한 글도 보낸 터였다.


그런데 그 쿠폰이 이미 사용된 쿠폰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일단 자신의 카드로 케이크 값을 치렀다. 정신없이 허둥지둥 아이와 케이크를 어린이집에 넣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발걸음을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는 쿠폰 회사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는 이 쿠폰이 '일산 장항'에서 자신이 구입한 날 이미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건 정말 뻔한 사기다. 기가 막혀서 당장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 바가지 욕을 쏟아붓고 싶지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괜히 자기를 사기를 당한 어리숙한 놈으로 볼까 소심해져 전화할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 남자는 생각나는 대로 판매자에게 보낼 말을 문자란에 써본다.


 '이런 뻔뻔한 사기꾼아. 당장 너 신고한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 남자는 지우고 다시 쓴다.    


'제가 구입한 날 이미 사용한 쿠폰이네요. 1월 2일 일상 장항에서 사용됨. 연락 없으면 바로 신고하겠음'


문자를 보냈지만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까짓 16000원이지만 오늘 아침 기분을 제대로 망쳤음엔 틀림없다.






1월 3일, 다시 그 여자



'제가 구입한 날 이미 사용한 쿠폰이네요. 1월 2일 일산 장항에서 사용됨. 연락 없으면 바로 신고하겠음'


문자를 확인하고 여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제 중고나라에서 모바일 쿠폰을 산 사람이 보낸 문자였다. 여자는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중고나라에 별 사기꾼이 많다고 하던데, 자기가 써놓고 이미 쓴 거니까 환불하라는 식으로 어기 장을 내려는 건가. '1월 2일 일산 장항에서 이 사람이 쓴 거일 수도 있잖아. 자기가 써놓고 시치미 떼 버리면 나도 증명할 길이 없는 거고. 이 사람이 부산 산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거지. 아 진짜 무섭다. 이 사람 사기꾼인가 봐.'


 일단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한다. 남자의 다소 작은 목소리의 배경에 대중교통 안내 방송이 들린다. 여자는 다급하게 말한다.


"저, 진짜 제가 안 썼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제가 오늘 아침에 가족 앞에서 망신당했거든요? 이미 일산 장항에서 쓴 쿠폰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요. 하.... 진짜 제가 안 써서요. 일단 끊어보세요. 제가 그 쿠폰 회사에 통화 좀 하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여자는 끊자마자 쿠폰 회사 고개센터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쿠폰이 사용된 날짜와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와 거래 문자를 주고받은 시각을 확인하니 쿠폰은 거래가 성사되기 1시간 전에 이미 누군가가 쓴 것이다.


 여자는 사건의 정황을 정리해본다. 내가 중고나라에 쿠폰을 올리고 팔리는 시각 사이에 누군가 내 쿠폰을 썼다. 분명히 중요한 번호는 지워서 올렸는데 어떻게 누군가 써 버린 건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고도의 기술로 숫자를 살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CSI 같은 미드나 범죄 영화를 보면 아주 기계를 잘 다루는 해커 비슷한 사람들에게 그런 일 따위는 아마 껌일 것 같다. 여자는 무서운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몸서리가 쳐진다. 남자에게 사과의 문자를 보내고 돈을 환불해준다. 이젠 모바일 쿠폰 같은 건 거래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1월 2일,  일산 장항의 '그놈'.


그놈은 그날 저녁, 학원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막 참깨 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같이 수학 수업을 듣는 친구 녀석이 땡땡이치고 라면이나 먹자고 했다. 녀석이 사준다는 말에 따라 내려왔지만 친구와 어울리기보다 핸드폰 게임을 더 하고 싶었다. 그가 하는 게임은 제대로 하려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능력치를 키워야 했다. 그놈에게 용돈에 생기면 그는 아이템을 사는데 썼다. 엄마한테 문제집을 산다고 했지만 그놈이 진짜 샀던 문제집은 달랑 두 권뿐이었다.


그놈이 게임 이외로 습관적으로 접속하는 사이트는 '중고나라'였다. 가끔 중고나라에 모바일 게임 상품권이 싸게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놈은 게임창을 켜둔 상태에서 중고나라의 '상품권/쿠폰' 메뉴를 클릭했다. 아직 뜨근한 라면 국물을 한번 들이켜다가 그놈이 옆 친구한테 말한다.


"헐... 어떤 병신 새끼가 모바일 상품권 '바코드' 올렸다"


아직도 라면을 먹는 그놈의 친구가 핸드폰을 힐끗 보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누가 진짜 바코드를 올리냐. 빙신"


친구는 먹던 면발을 마저 후루룩 먹고는 그놈의 핸드폰을 낚아채 자세히 본다.


"어, 숫자는 열심히 지웠네. 그럼 진짜 바코드인가?"


그러자 그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한다.


"야, 이거 한번 써 보자. 저기 파리바게트 있잖아. 안 되면 말고, 씨발"

그리고 그놈과 친구는 라면 뒤처리도 하지 않고 건너편 파리바게트로 들어간다.

계산대에 들어가서 점원에서 정중하게 물어본다.


"저기요. 이거 쓸 수 있나 한번 찍어봐 주실래요?"


"네, 고객님. (띠익~)"


바코드 인식하는 소리와 동시에 점원이 말했다.


"2만 원 쓰실 수 있으신대요"


그놈은 땡잡았다는 듯이 친구를 보며 웃었고, 친구가 한 마디 했다.


"와. 진짜. 얘 완전 미친놈 새끼네. 진짜 바코드 올렸어. 흐흐"


그놈은 빵을 고르며 혼자 중얼거린다.


"또라이. 흐.... 머 살까. 아 배부른데... 꺼억~"










+



네네..

위의 '그 여자'는 접니다.

나머지 '그 남자'와 '그놈'은

실제 인물 임은 틀림없지만

제가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년'일 수도. 저 브런치에서 신고당하는거 아니겠죠.

전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욕..을......)


최근에 중고나라에 모바일 상품권을 팔았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 발이 고생한다는 옛 어른 들의 말씀.

정말 틀린 말이 아닙니다. 엉엉.


사실 바코드를 그대로 올린 저나,

그걸 보고 산 그 남자분이나

정말 한 숨만 나옵니다.


이 험한 세상, 이렇게 떨어지는 머리로 살려니 참 걱정되네요.

독자님들은 혹시라도 이런 실수는..... 아.. 무.. 도. 안 하시겠죠? (흐엉)


이건 정말 저니까.

머리 나쁜 저니까 하는 거겠죠. (아, 자책 모드)


연초부터 저는 무척 비루해진 기분이었는데,

사실 주위 분들이 이 이야기를 너무 재밌어해서

ㅡ.ㅡ

기분 전환할겸 소설처럼 써봤어요.


독자님들도 한번 웃으시라고

창피함에도 불구하고 올려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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