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3.
사실..
고백하자면 이번일이
아주 처음은 아니다.
이렇게 어이없고
나에게 속은 기분과 동시에,
뇌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는 있는지,
아니면 좀 늙어서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고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경우가...
비단 이번 처음은 아니다.
그때가 결혼 전이었으니까,
아마 2009년 가을 즈음이었다.
결혼한지 얼마 안 되서 이혼을 한 뒤
이듬해 재혼을 하는 직장 동료였다.
일년만에 두번째 청첩장을 주는 민망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식권 두장을 미리 넣은 청첩장을 받고는
열심히 사려는 그 분을 응원하고 싶어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청첩장과 식권을 가지고
그 결혼식에 찾아갔다.
예식장안에서 이름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다가
관계자에게 물어보며 청첩장을 보여주니
그 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랬다.
"이거 어제 결혼식이잖아요"
진짜 유체이탈을 할 수만 있다면
바로 내 얼굴에 쌍 싸대기를 날리고 싶었다.
그리고 안 좋은 기억은 잊도록
만들어주신 조물주의 큰 배려로
이 스뚜삣한 기억은 거의 심연으로 묻힌 줄 알았으나,
저번주 토요일의 헤프닝으로 이 해묵은 기억이 또렷히 생각났다.
아무튼 친구가 오랫만에 한국에 왔다.
심지어 이번엔 남편과 같이 온다.
친구도 나도 지금의 신랑들과 연애중일 때 딱 한번 만났었다.
(어색했던 더블데이트, 외국인 울렁증이 있는 신랑은 진땀)
한국에 2주만 머물 예정이라 우리는 나름 머리를 썼다.
몇년전 한국에 왔을 때 친구가 우리집에서 한 10일정도 있다가
친정식구들의 원망아닌 원망(?)의 눈총을 받았던 터라...
(내 친구가 철이 조금 없기도 하고, 내가 눈치가 없기도 하고
그런데 같이 노는게 너무 재밌어서 어쩔 수 없었다)
여튼 우리의 계획은 친정집에 가기전에 만나자.
그러면 인천공항 근처에서 빨리 보자.
우리 가족은 미리 호텔에 가있을께,
너도 오후 3시 도착이면,
좀 쉬고 6시쯤 저녁 같이 먹자.
그리고 천하의 바보 천치가 따로없는
나는 토요일날 부터 친구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랑한테 내가 토요일 출발을 도착으로 착각했다고
이실직고하는 순간도 굉장히 민망했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지 하는 신랑의 말에
고마워서 눈물날 뻔.
(우리 신랑 진짜 착해)
무엇보다도 친구와 주고받은 카톡창에
수없이 나온 '일요일'이라는 말을
왜 나는 못 본건지...
진짜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누구냐...난.)
다행히 봄방학이 시작되서
월요일 출근은 안해도 되는 상황.
출근을 해야하는 신랑은 일요일날 가고,
나는 애들을 데리고 1박을 더 하기로 했다.
다음날 오후에 예정대로(?) 친구는 오후에 왔다.
같이 저녁먹고,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수다를 떨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의 스뚜삣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족 단체 톡방에 알림음이 울리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신랑더러 혼자 집에 가라고 한 일요일의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은 바로..
바로...
진짜 쓰면서도
정말 망설여지지만...
신랑 생일이었다.
가족 단체 톡방에
매형 생일축하해요,
사위 생일축하하네,
형부 생일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축하메세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신랑.
이 글의 마무리가 굉장히 어색하긴 한데,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생일 정말 축하해.
그리고 내가 토요일에도 말했듯이,
잔소리 한번 할거 두번 세번 더해주고,
해야되는 일이 있으면 내가 짜증날 정도로
계속 계속 물어봐 줘.
그리고 무엇보다.
늙어서도 나 끝까지 데리고 있어줘.
항상 여보의
그 무한한 인내심에
경외감마저 들 정도야.
+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몇 주 전부터 신랑이 생일선물로 갖고 싶다던
닌텐도의 신제품, '스위치'를 허락하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단호하게
'그건 안돼' 라고 했었건만....
이번엔 하늘이 신랑을 도운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