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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Aug 08. 2016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하루

2016.8.7.




34평,
13명의 1박2일


지난 토요일, 온 친정 가족이 우리집에 모였다.

어른 8명, 아이 5명.

원래 다섯 명이었던 우리 가족은 결혼과 출산을 반복하며 대가족이 되었다.

서른네 평의 단출한 아파트에 13명이 잔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늑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발 뻗고 잠들 자리를 배정하는 것은 퀴즈와도 같다.

어젯밤 집 주인으로서 풀어야 했던 잠자리 배정 조건은 이랬다.


1. 에어컨 커버 가능 공간은 방 1개와 거실 1개.

2. 아이는 엄마와 세트로 묶어야 함

3. 심하게 코 고는 두 사람은 최대한 격리해야 함 (엄마, 남동생)

4. 밤늦게까지 술 한잔 하려면 아이들은 최대한 방으로 몰아야 함.


이 어렵고 복잡한 퀴즈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몇몇 사람의 희생으로 해결이 되었다.

제부와 신랑이 에어컨 안 들어오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제는 쉽게 풀렸다.

아이들은 방에 다 몰고 엄마들은 낑겨잤다. (밤새 내 머리위의 조카발을 몇번 치움)

코골이 배틀을 벌일 엄마와 남동생은 거실에, 아빠는 미리 거실에 잠들어서 그냥 두는 걸로.

(아빠, 코골이에 관해선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셨죠?)  



일요일 하루, 
세끼 밥 해먹기

엄마가 끓인 미역국으로 아침은 무사히 넘어갔다 치더라도, 점심부터는 집주인이 뭔가 좀 해야 했다. 잘 한다는 말 듣고 싶은 그 욕심 때문에, 나는 신세를 볶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은 간단하게 면 종류, 저녁은 고기류로 가야겠다고 구상했다. 아침에 미역국이었으니까 점심은 국물요리보다 새콤달콤한 비빔국수가 좋겠다. 그래 저녁은 며칠 전 초대받아서 맛있게 먹은 버터 소스 닭다리살 스테이크를 선보이는 거야!


집에는 없는 재료가 많았다. 마트에서 계란, 오이, 부추, 국수, 닭다리살을 동생과 낑낑대며 들고 왔다. (이 더운 날 왜 걸어가서) 계란을 불에 올리고 비빔국수 소스 황금레시피를 검색해봤다. 아뿔싸. 파인애플 통조림이 필요했다. 살짝 망설였지만 또다시 내 그 욕심 때문에 집 앞 슈퍼로 달려가 사 왔다. 최고의 비빔국수를 선보이고 싶었다. 부침개를 같이 곁들이면 맛있겠다는 의견이 나왔다.(누구냐 부침개 말한 사람) 혼자 하면 버거웠겠지만 엄마가 있었기에 그나마 부침개와 국수를 동시에 상에 올릴 수 있었다. 음식 맛에 유독 예민한 가족들의 반응은 괜찮았다. (사실 다들 많이 굶주려있었다.)


점심을 먹고 치우고 저녁에 해먹을 닭고기 손질을 했다. 닭다리살만 충분히 팔지 않아서 아예 볶음용 닭 3팩를 샀더니 뼈를 일일이 다 발라야 했다. 난생처음 닭뼈와 살을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포장을 벗겨보니 한팩에 닭다리가 4개였다. 고로 닭 6마리를 모두 손질해서 우유에 재워두고는 진이 빠져버렸다. (나 왜 이러고 사는 것인가)


낮잠을 자고 있는 조카 옆에 누워 쉬었다. 꿀잠이 왔다. 잠결에 아이가 깨서 우는 소리, 현관문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얼마나 잤나. 깨운하게 일어나니 벌써 채광 색이 바뀌었다.. 옆에 누워있던 조카는 거실에서 계속 짜증을 부렸다. 나는 끈적끈적한 몸을 긁어가며 정신을 차리는 중이었다. 조카가 자꾸 울고 짜증을 부리는지 어른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그러다 조카가 짜증 난 원인에 대한 의견은 하나로 좁혀졌다.


"얘 밥때 돼서 배고파서 그러네"



얘 밥은 올려놨어?



다들 그런 의도는 없었겠지만

총대를 매고 있는 나는 왠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나처럼 좀 피곤해 보이는 엄마가 나한테 말했다.


"얘 밥은 올려놨어?"


밥 먹고 치우고 밥 먹고 치우는 일은 마치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끝인가 하면 다시 시작으로 와있다.

굉장한 일이다.


어릴 때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서

우리 셋을 그리도 잘 해 먹였던 우리 엄마.

실로 굉장하다.


Mommy,

존경합니다.




+

오해의 여지가 있어 덧붙이자면,

평소보다 많은 인원을 해먹이는 일은 수고스럽지만

무척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자주 놀러와요. 다들!)


단, 오늘까지 만이라는 전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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