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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Aug 05. 2016

정말 혼자 있을 수 있겠어?

2016.8.5.



 여름휴가 후유증  '어린이집 가기 싫어'



"나 졸려.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엄마 일하러 가고, 오빠도 유치원 가는데?"     


"나 혼자 집에 있을 거야"     


"어떻게 집에 혼자 있어. 빨리 가자."     


"졸려. 혼자 있을 수 있어! 엄마 가"     


아침부터 딸아이가 졸리다며 늑장을 부린다. 다이나믹한 방학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어제는 어린이집 물총 놀이에도 심드렁하니 그냥 앉아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왈 "어머님, 사이판 바다에서 놀다 오더니 이런 건 시시한가 봐요")      

 

  큰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이집 가자'라는 미명 하에 아이와 협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이미 경험한 터였다. 잘 다녀오면 초콜릿을 사주겠다. 다녀와서 엄마랑 재밌게 놀자. 오늘 어린이집에 재미있는 활동을 한다.라는 사탕 같은 말을 살랑살랑 흔들어봤자 아이는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다. 내가 육아 전문가는 아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나마 깨달은 것은 '경험'만큼 확실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없다는 거다.     

 예를 들면,  한 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외출 준비를 할 때다. 패딩을 입히려고 하면 싫다고 거부할 때가 종종 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나가면 감기 걸려. 빨리 입자' 하며 실랑이를 벌이며 억지로 입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고집도 만만치 않아서 항상 애를 먹었다. 하지만 육아에 요령이 생기면서 나도 수가 생겼는데, 패딩을 안 입겠다고 그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그냥 나간다. 티셔츠 한 장 달랑 걸친 채 나가면 처음엔 시원하다는 둥 눈을 잡는다며 뛰어다닌다. 하지만 곧 닭살 돋은 팔을 손으로 비벼가며 춥다고 하는데 그때 인심 쓰듯 "코트?"하고 물어보는 거다. 그러면 십중팔구 아이는 절실하게 냉큼 코트를 입는다. 추운 것을 말로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경험하게 해주는 것. 열 마디 엄마의 잔소리보다 직접 체험해서 느끼게 해주는 게 효과적이었다.   

  

그렇다고 이 방법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아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시댁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들은 계단으로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시댁은 무려 14층. 난 안된다고 했지만, 머 몇 층 가다가 말겠지 싶어서 계단으로 가기로 했다. 그건 정말 실수였다. 6층 정도 가면 힘들다 하겠지 생각했건만, 아이는 10층에 다 달아서도 계단 위를 날아다녔다. 아들의 능력치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대가로 나는 며칠 동안 종아리 알을 얻었다.     




정말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한 딸아이를 두고 잠시 고민한 끝에 용단을 내렸다. 일단 집에 혼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자. 엄마가 일하러 가면 널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그래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와보자. 녀석이 어린이집이라도 가야 지하고 깨달겠지. 그래 마인드 무장하고 연기. start!     


"진아, 집 잘 보고 있어. 오빠는 유치원 가고 엄마는 일하러 갈게."     


"응. 나 여기 누워있을게"     


대범한 녀석 같으니라고.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안방 침대 위에 태연하게 누워있다. 첫째는 이 정도 멘트만 좀 날려도 겁먹는데 둘째는 좀 다르긴 하다. 동생을 두고 나가자는 엄마 말에 오히려 패닉 상태가 된 아들은 동생을 계속 설득했다. 진이가 계속 혼자 있겠다고 하자. 아들은 비장하게 한마디 했다.     


"야, 누가 벨 누르면 절대 문 열어주지 마. 없는 척 해"      


 유치원에서 안전교육은 확실히 받았구나 싶었다. 다시 아이에게 어린이집 가자고 사정하며 조를까 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었다. 아들도 따라 나왔다. 빼꼼히 안방을 보았지만 미동도 없다. 독한 것. 집 밖으로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어라 조용하다. 정말 4살짜리 아이가 괜찮은 걸까? 진짜 그렇게 졸렸나? 설마 잠든 건 아니겠지? 아들 유치원만 데려다주고 한번 다시 가보자.     


  아들과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왔다.(우리 집은 2층) 우리 집 바로 아래층은 아파트 가정식 어린이집이다. 어린이집 문 앞에 "엄마"하며 손을 벌리고 울고 있는 아이와 어린이집 선생님, 그리고 미안한 표정의 엄마가 보인다. 녀석도 우리 딸처럼 떼를 쓰며 울고 있구나. 그 아이의 엄마도 진땀을 빼고 있었다. 저 엄마도 어디 출근하나 보다. 입을 벌린 가방 속 서류 뭉치가 잔뜩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내 심장도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애가 갑자기 현관 밖으로 나오면 어쩌지? 그럼 위험한데'  불안한 상상을 한번 하자 갑자기 온몸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이 쫄밋해져 우리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그 집 애기 괜찮아요?


50분처럼 느껴진 5분이 지나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고 아이를 부르며 들어갔다.     


"진아! 엄마 왔어"      


아니나 다를까 진이는 얼굴이 벌게진 채 울고 있었다. 나도 너무 했다 싶었다. 5분이라도 아이는 무서웠을 텐데. 어린이집 보내겠다고 엄마가 너무 모질었다. 자책감과 후회가 밀려오며 울고 있는 애를 안아 등을 토닥여줬다.     

"혼자 있을 수 있다면서. 우리 아기 무서웠구나?        


"나 무서웠어. 혼자 있기 싫어"     


손으로 아이 눈물을 닦아주고 꼭 안아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다급하게 쿵쿵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벨도 안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바로 아래층 어린이집 원장님의 어머님이었다.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다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아니, 그 집 애기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무척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진이가 우는 소리를 바로 아래층에서 들었나 싶었다. 아이 창피해. 우리 아이가 운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왜 그러시지.     


"아... 우리 집 아이가 좀 오래 울어서 걱정되셨나 봐요"     


"아니. 애가 창문 밖으로 막 소리를 치며 울더라고"     


"네? 소리를 쳤다고요? 머라고 했는데요?"     


"아니, 저 어린 게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하고 막 소리치며 우는데 우리 선생님들 다 식겁했어"   

  

그리고 나는 식별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의 시선에 어느 정도 조심스러운 '의심'이 섞여있다는 것을.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애가 어린이집 안 간다고 하길래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왔거든요. 그랬는데...."     


진실을 말하고 있으나 어쩐지 내가 들어도 궁색하게 들렸다.



난 어떤 엄마로 비칠까



아 이게 뭔 꼴이람.

아주머니는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내려가셨다.

아이들을 혼내며 바락바락 소리친 것도 꽤 들었을 테고,

화장실에서는 환풍구 사이로 내 말소리도 다 들었을 텐데.

 (나도 어린이집 아이들 소리가 다 들린다)      

대체 그 아주머니는 나를 어떤 엄마로 생각할라나.


아니면 난 그렇게 모질고 우악스러운 엄마인 걸까?

모든 상황을 설명할 정황과 이유를 빼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본 그 모습이

어쩌면 바로 내 진짜 얼굴일까?     


오늘부터 아랫집 어린이집 선생님 일동이

전보다는 나를 주시하고 있을 터...(에혀)

정신 바짝 차리고 행동을 똑바로 해야겠다.                     



+

그리고

딸내미는 오늘 아침 어린이집에 뛰어갔다.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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