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Aug 04. 2016

여름 휴가지에서 있었던 일

2016.8.3.



                 


하늘이 저렇게 선명한 색이었지   


  짙푸르다 못해 형광빛이 감돌았다. 대자연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구름은 토실토실 입체감이 넘쳤다. 바닥의 모래가 훤히 보이는 바다에 발을 담그니 미지근했다. 그만큼 날은 훅훅했고 두껍게 펴 바른 선크림이 어느 정도는 효력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야자수에 간간히 보이는 파라솔과 의자들.      

               

  중국인 가족들의 익살스러운 대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왠지 성이 왕씨일 것만 같은 중국인 아저씨의 배는 참 크고 둥그랬다. 성인 치고 좀 짧은 스포츠머리에 크고 부리부리한 눈이 선하다. 그 큼직한 손으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 아들과 모래성을 쌓는다. 소박한 모래성이 아니라 내 팔뚝 높이 만한 높이의 벽이 보였다. 틈틈이 해초도 섞어서 안 무너지게 하고 높이 쌓았나 보다. 과연 대륙의 스케일.     


   바닷물이 모래사장에 살짝 걸쳐 들어오는 자락에 앉았다. 아들은 모래성을 만든다고 했고, 뭔가 제대로 필 받은 듯 신랑은 제대로 된 모래성을 보여주겠다며 갑자기 의욕적으로 흙을 팠다. 굴 비슷한 것을 파는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어느샌가 모래놀이용 삽은 집어던지고 손으로 헥헥거리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빠와 달리 아들은 모래성 만들기에 금방 흥미를 잃은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랑은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거침없이 파나 갔고, 바로 뒤에 중국인 아빠가 만든 거대한 성벽 같은 모래둑이 보였다. 나는 이 게임은 아무래도 승산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은 통을 갖고 계속 요리를 했다. 바닷물을 길어와서 모래를 조금씩 집어넣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들은 자기 다리에 모래를 잔뜩 덮더니 나에게 도와달라며 벌러덩 누웠다. 나와 신랑은 녀석의 몸 위에 모래를 열심히 올렸고 아들은 무척 좋아했다. 딸내미를 보니 아직도 요리 놀이가 한창이다. 평소 혼자 잘 놀 때 절대 내가 끼어드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이런 낭만이 가득해 보이는 사이판의 바다에서는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소꿉놀이에 동참을 알리는 질문을 녀석에게 던졌다.

                   

"뭐 만들어요?"                    


"미역국이요. 근데 저 달걀 좀 주세요"                    


"달걀?"      


센스 넘치는 엄마답게 모래를 달걀 모양으로 빚어서 건냈다.                    


"여기요, 달걀이에요."                    


스스로도 이건 정말 재치 있었다고 생각했다. 녀석도 흙떡 달걀이 퍽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잔뜩 올라간 입꼬리로 나에게 다시 말했다.                   


"저 고구마도 주세요"                    


"네, 여기 있어요."                    


젖은 모래를 손으로 꾹 쥐었나 놓으니 정말 고구마와 비슷해졌다. 딸아이가 한번더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때였다. 바닷물에 둥둥 떠있는 해초들을 보았다. 이거다 싶었다  미역국에 결정적인 재료. 녀석이 좋아하겠다. 그래 이걸 미역이라고 하자. 엄마의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센스였다.                    


"자! 여기 미역 있네요. 여기 있어요~" (굉장히 자신감 있게 권했다)                    


그러자 딸이 말했다.                    


"뭐예요. 이거 미역 아니잖아! (휘릭)"                    


하고 거침없이 던져버렸다.                     


모래 떡으로 만든 달걀과 고구마는 맞고      

실제 미역과 촉감마저 비슷하게 미끄덩한 해초는 아니었다.                    


4살 녀석의 복잡 오묘한 모래놀이의 세계.     





엄마, 파도가 나를 자꾸 세게 밀어


다시 바닷물로 들어갔다. 바다의 비릿하고 미적지근한 짠내가 진동을 한다. 아들은 스노클링 장비를 갖추고 물고기를 본다며 머리를 연신 물에 넣었다 뺐다했다. 딸내미는 내 손만 꼭 쥔 채로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물놀이를 오면 딸과 굉장히 친해진다. 물놀이를 하는 내내 계속 손을 잡고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휴가에 와서 딸이 더 말아 많아졌다. 특히 물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갑자기 파도가 밀려온다든가 하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살짝 흥분하며 재밌어했다.                    


"엄마, 파도가 나를 자꾸 세게 밀어"                    


동시에 나올 법한 구절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그 말이 너를 얼마나 더 사랑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지. 물 위에 둥실둥실 거리며 아이들 손만 잡아줘도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바다 안에서 내 손을 살짝 놓았다 다시 잡는 놀이가 한창이었다. 내 손을 살짝 놓고 '꺅'소리를 지르던 딸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엄마, 나 쉬 마려워"                    


해변을 여기저기 봤지만 화장실이 눈에 안 들어온다.                     


"진아, 그냥 싸"                    


"뭐? 물에다 싸?"                    


"응, 물에다 그냥 싸"                    


녀석은 입술을 아주 살짝 모으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에서는 저만치 물고기라도 잡을 것 같은 진지함이 보였다. 소변을 봤는지 궁금해졌다.                      


"다 했어?"     


"...."                    


녀석이 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대답이 없다. 다시 물었다.                     


"쌌어? 바다에서는 어쩔 수 없어. 그냥 싸야 돼. 못 하겠니?"     


그리고 딸이 말했다.                    


"엄마, 쌌어 쌌다고. 물어보지 마!"                    


나는 무안해져 검지와 엄지로 바닷물에 젖은 코를 닦아 내렸다.                                                         





+

브런치 독자님들 잘 지내셨죠?

요 며칠 여름 휴가를 다녀오느라고 그림일기를 좀 쉬었습니다.

(물론 블로그에는 여행 사진을 열심히 올리고 있었지만요.^^;;)  

잔뜩 충전하고 왔더니 일기가 술술 써지내요.

역시 삶의 쉼표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으로의 복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