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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훈 Feb 03. 2016

중국 이야기에서 한국을 읽다

야망의 시대 by 에반 오스노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젊은 남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게임을 하면서 몇 시간씩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거의 모든 마을에는 얼마나 외진 곳이든 상관없이 하나같이 그런 인터넷 카페가 있었다. 카지노에서처럼 창문이 거의 언제나 외부의 빛을 차단했는데, 내가 보기에 유일하게 사람들이 시간을 다투지 않는 장소 같았다.

무기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시간을 때우고 현실을 잊게 해주던 역할을 해줬던 것은 과거 아편이었다. 마약이고 술이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게임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멀리 가지 말고, 평일 낮 주택가 인근의 피씨방에만 가봐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모든 동네에는 얼마나 외진 곳이든 상관없이 하나같이 피씨방이 있다. 창문은 외부의 빛을 차단하고, 손님들은 담배를 피웠다.(한국에선 규제로 흡연이 금지됐다.) 이곳에선 누구도 시간을 다투지 않는다.

정부는 <온라인의 여론에 대해서도 패권을 장악해야 했다>. 그 같은 목적으로 <여론 조성단>이라고 부르는, 일반 사용자로 위장한 채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논쟁을 잠재우기보다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부대를 확충했다.

댓글부대 논란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당국은 구덩이를 파서 부서진 열차의 잔해를 파묻고는 복구 작업을 위해 땅을 단단하게 다져야 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이 조사를 방해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하자 불운한 대변인은 <여러분이 믿든 안 믿든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문구는 신뢰를 잃어 가는 정부의 상징이 되어 인터넷을 떠다녔다.

우리도 멀쩡히 다니던 배가 가라앉는 사건이 있었고, 진상조사 요구를 무시하는 정부와,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는 담당 공무원들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많은 사람들은 위험한 해류로 둘러싸인 채 새롭게 번창하는 섬에 사는 듯 느끼고 있었다. 요컨대 섬에 발을 디디고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고 만족스럽지만 한순간이라도 헛디뎠다가는 곧바로 세상을 하직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헬조선 아니던가. 읽는 내내 어느 나라 얘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던 저런 문장들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저자인 에반 오스노스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한국을 사례로 든다. 물론 중국과의 비교를 위해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이 있었지만 민주화로 잘 이행해 성공을 거둔 나라의 사례 말이다. 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야 말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정부,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관료, 불안에 시달리는 시민들... 한국은 분명 중국과는 다른 나라지만, 그걸 알면서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그런 미국인들의 중국 비평처럼 중국을 곧 쓰러질 불량국가처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야망의 시대는 미국과 중국이 어떤 측면에서 서로 닮았는지를 설명하고, 어디서 서로 다른지 깨달으려고 애쓰는 충실한 관찰이자 분석 일지다. '야만의 시대'로 문을 열었던 약탈적 자본주의는 미국과 중국 모두 동일했고, 이 시기가 어느 정도의 초기 축적을 가능하게 한 뒤 양 국가가 택하는 행보에서 차이점이 나오기 시작한다. 미국인들은 이 상황 이후 자신들이 이뤄낸 미국식 민주주의의 성과를 자랑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오히려 세상이 서구 우월주의 일변도로 흘러가는 와중에도 중국은 중국만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중국의 모습을 존경한다. 중국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베필을 만나 결혼까지 했던 저자가 보는 중국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독자에게도 이런 존경과 존중의 감정은 그대로 전해진다.


물론 거기서 끝내는 것 또한 분명히 아니다. 작가는 여전히 헌법이 지배하는 국가 시스템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신봉자다. 그리고 이런 신념은 또한 '야망의 시대'라는 하나의 시기를 정리해 가는 중국인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야망이란 중국을 상징하는 단어였지만, 이제 그 단어는 중국에서도 과거의 단어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을 이야기하는 책인데도 수십년 전을 얘기하는 역사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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