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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하책방 Aug 01. 2024

'청춘'과 '별'

詩와 나무






그 계절에는 발바닥에 별들이 떴다

발그레한 아이의 피부 같은,

막 떠오른 별들로 가득한 벌판에서

나는 말발굽을 주웠다

밤마다 달빛에 비춰보며 꿈을 꾸었다

벌판을 지나 하늘에 화살을 박는

말 울음소리를

벌판의 꽃들이 짓이겨진

하늘로 달려 나간 푸른 바람을

말발굽의 꽃물 범벅을
내 잠 속으로 향내 나는 청마가 달려오며

성운 가득 밴 냄새로

별자리를 엮어갔다

빛나는 말발굽에

쩡쩡한 겨울 하늘도

파편으로 흩어졌다

우주가 내 발바닥으로 자욱하게 몰려드는

푸른 연기로
그러나 나는 이미 알았다

꽃들이 어스름 속에서

추억처럼 진해진다는 것을

짓이겨진 꽃물이 사실은

어스름이라는 것을

말발굽이 놓여 있는

빛의 길목으로

지난 시절의 꿈들이 수줍은 듯

그렇게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지나 가버리는 것에 대한 메모 」

   박형준  集『 불탄 집 』 (천년의시작, 2013)








青春




1.


西洋 음악 한가운데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처럼


기억의 그늘 

중력도 없이

옛날의 어둠 너머  

흐르는 비처럼


아직 오지 않은

하얀 모래사막 내려앉은 

북새같은 시간처럼





2.

사랑스런 낯선 기적이여. (···) 

가수는 무시무시하고 음울한 곳조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  

그대 속에는 내 젋은 시절의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직 살아 있다. 그대는 삶으로서, 청춘으로 희망을 안고 여기 누런 무덤의 폐허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대는 아직도 나에게는 모든 무덤들을 파헤치는 자다. 건투를 빈다. 나의 의지여! 무덤이 있는 곳에서만 부활이 있는 법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얘기했다』(민음사, 2004) 

제2부 <무덤의 노래> 중 발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심보선 「청춘」중에서



3.

내 손안의 여름햇살을 움켜쥐면 쥘수록 스스르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靑春이 짙은 만큼 여름은 어두운 초록이 되고 그 초록은 나뭇잎이 된다. 인생의 靑春이 나뭇잎이 되는 그 과정이 여기 길 위에 있다. 삶이 뜨거울 때 우리는 살아있었고 또 살아있었다. 그 뜨거운 입김을 따라 길을 따라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다. 無知의 언덕을 너머 지식과 사랑, 그 들뜬 희열로 만났던 사람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아무도 없다. 어제는 따뜻한 볕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삶의 조그만 희열을 느꼈고, 오늘은 느닷없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꼼짝도 못한 채 그 공포가 가실 때까지 길 가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기 멀리 삶의 솔기가 우두둑 튿어지는 소리는 내며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물고기가 물고기가 되고 나무가 나무가 되는 일들 너머 우리는, 가을처럼 늙어간다.  





1.


당신이 세상을 더디게 살고 있는 동안 

별은 천천히 차가워져 갔다

흐르지 않는 눈물이 서러운 당신

나의 밤에 당신의 아침을 기다린다


당신이 지는 자리


빛나는 것, 

하나



2.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어린왕자는 B-612, 별를 떠나왔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의 별, 나의 구휼. 지친 꿈으로 뒤척이고 있을, 잠들지 못한 밤. 



3.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에 」 

   김광섭 集『 겨울날 』(창작과비평, 1975)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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