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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하책방 Jul 17. 2021

물방울에게 길을 묻다

단상록(斷想錄)



완벽이라는 말에의 집착은 존재적인 모순을 넘어선 자기완성의 의지를 지향한다. 가치상관의 의미를 넘어선 완전무결, 無. 흔적없이 증발한다는 의미는 그 연장선에 닿아있다. 불교철학에서 물방울은 존재요소의 한 부분이고 또한 영원한 순환을 의미한다. 영원한 순환은 그 바탕을 이생의 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물방울의 순환은 또 다른 의미로, 하나의 존재로서 다른 요소들과의 화합이라는 연기(因緣), 즉 인연에 의해 다른 것으로 현현한다는 불교의 연기론까지 가 닿는다. 이 연기론은 무상, 무아, 공성(空性), 중도(中道)의 의미까지 이어보면 물방울의 의미소가 갖는 증발의 속성과 존재의 공적인 상태를 하나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로부터 물방울로의 전이가 갖는 이런 극적인 상태는 인간이 갖는 존재적인 고통에의 진의를 묻는 하나의 길이다.


그런 연기론으로서의 자아는, 나는 곧 물방울이다. 한없는 원형에 가까워지려고 동그랗게 몸을 말아 내 안으로 침잠하는 일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잠시 떨어져 나온 내 환원의 가치에 대한 현현이다. 물방울-나-물방울의 순환이 이 존재론적인 소외와 삶의 고통과 환희에 대한 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내게 길을 묻거든 나는 이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을 한다. 슬프지 않은 기다림과 미풍에 기댄 씨앗들의 잠, 그리고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부드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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