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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하책방 Nov 10. 2021

가을의 소네트

詩와 나무




수정처럼 맑은 그대의 눈이 내게 묻기를:

"야릇한 님이여, 당신에게 내가 무슨 매력이 있나요?"

— 그저 귀엽게 입 다물고 있어다오! 내 마음은,

태곳적 짐승의 순박함 빼놓고는 모든 것이 성나게 하는 내 마음은,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의 끔찍한 비밀을,

또 불꽃으로 씌어진 그 슬픈 전설도,

부드러운 손으로 날 흔들어 오래오래 잠들게 하는 요람이여,

나는 정열을 증오하고, 정신은 날 아프게 한다! 

우린 그저 조용히 사랑하자구나, 「사랑의 신」이 

제 집에 몰래 숨어 운명의 활을 당긴다,

그 낡은 무기고 속의 무기를 난 알고 있다: 

죄악, 공포 , 광기를! — 오 파리한 데이지꽃이여!

그대 또한 나처럼 가을의 태양이 아니던가?

오 그토록 새하얀, 그토록 차가운 나의 데이지꽃이여!  



「가을의 소네트 SONNET D'AUTOMNE」 
  보들레르 詩集 『악의 꽃』(문학과지성, 2003)    






간지럽고 환하고 발랄한 봄날을 지나

고즈넉하고 견고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자

철새들이 다닥다닥 날아들기 시작했다

다음에 돌아올 시간들을 미리 기억하며

가을 햇살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벽에 붙어

여름에 먹었던 벌레와 과일과 물방울들을 그려넣고 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돌아올 스스로를 기억하기 위해
이제는 내가 아닐 스스로를 위해
붕붕 공기를 누르며 새들이 날아올라 떠나가고
겨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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