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나무
죽은 사람이 살다 간 南向을 묻기 위해
사람들은 앞산에 모여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소년들은 잎 피는 소리에 취해 山 아래로 천 개의 시냇물을 띄웁니다. 아롱아롱 山울림에 실리어 떠가는 물빛, 흰나비를 잡으러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저 아래 저 아래 개나리꽃을 피우며 활짝 핀 누가 사는지?
조금씩 햇빛은 물살에 깎이어 갑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리도 깎이어 물 밑바닥에 밀리는 흰 모래알로 부서집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흰 모래 사이 피라미는 거슬러오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그대를 위해 사람들은 앞산 양지 쪽에 모여 있습니다.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신대철 詩集『무인도를 위하여』(문학과지성, 1977)
어떤 날들이 있었다. 지난한 시간들, 몇 개의 조각들로 나뉘어져 떠오르는 너의 얼굴. 삐딱한 모자를 쓰고 술을 권하던 너의 그 삐딱함이 좋았고 대책없는 감정으로 휩쓸러 떠다니던 너를 싫어했다. 신랄한 독설에 그저 미소짓고 무난한 변명으로 나를 세워주던 너를 좋아했고 술에 취하면 발작하던 너를 싫어했다. 뜻을 모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길을 찾던 너를 사랑했고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한없이 주절거리던 너의 삶의 지꺼기들을 미워했다. 우리는 관철동, 삼청동, 소격동을 돌아다녔고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 밤길을 걸었으며 몇 번의 여름 여행을 함께 했다. 길은 길을 따라 사라지고 기억은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너는 네 안으로 사라진 것일까. 바람이 불 때 마다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늦가을 나뭇잎처럼 너의 삶도 그 끝에는 그렇게 말라가고 있었나보다. 나는 너를 모른다, 마지막에 네가 가졌을 그 절망과 고독을 나는 모른다. 그것이 내게는 형벌이었다. 무덤덤하게 계속 살아야하는 것, 남아서 먼저 떠난 사람들을 기억해야하는, 원죄. 네가 남겨준 남은 삶의 의미를 위해 너에게 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개나리꽃처럼 활짝 피지 말고 나비처럼 날지 말고 흰 모래 사이를 거슬러 오르는 피라미처럼, 봄이 되어 버린 계절의 아득함 너머 검은 얼룩이 배어나온 오래된 그림처럼 뿌연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오르는 길. 그 날의 길을 너에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