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나무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오월」
피천득 詩集『피천득 시집』(범우사, 1999)
오월이 가고 있다. 바람이 부는 건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따라 어제가 어제의 어제가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는 여기, 순한 동물들은 언덕에 모여 온 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다. 사월의 나는 푸르고 아름다웠고 오월의 나는 순하고 연했다. 그리고 이 계절의 순환이 어느 쯤에서 끝날 것임을 안다. 사월에는 이 계절의 끝에는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으리라 믿었다. 오월이 되어서는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잊은 것들과 그리운 것들 사이에서 기억의 무늬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흐려진다.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면 나는 무슨 꿈을 꾸어야하는 걸까. 어지럽다. 그러나, 나는 오월에 있다. 이 순간이, 지금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 지금 여기에 있다. 오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