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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하책방 Jan 24. 2023

지금 여기가 맨 앞

詩와 나무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詩集『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   








오늘은 어제의 내일, 그리고 나는 지금 노을이 지는 여기, 오늘에 있다. 오늘은 오늘이고 또 내일이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아니며 또한 나이기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허공에 올려놓는다. 그 고요한 순간, 찰나의 진공. 진공 속에선 말을 하지 않아도 너를 들을 수 있어 네 뜨거운 심장의 소리와 마음과 눈물의 파동을 전해 듣는다. 어디로 갈까. 12월의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봄날을 떠나보낸 차가운 바람이 지나간다. 겨울의 너는 봄을 기다리고 다른 길과 길 사이 다시 걸어가야할 길을 짐작하고 있다. 어제는 어땠나요? 감각은 오늘에만 있어요. 어제는 바람에 흩날려갔네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노래를 해주세요.


”오「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때가 되었다! 닻을 올리자! 우리는 이 고장이 지겹다, 오「죽음」이여! 떠날 차비를 하자! 하늘과 바다는 먹물처럼 검다해도, 네가 아는 우리 마음은 빛으로 가득차 있다.“*


너의 노래가 해가 지는 바다에 퍼져나가 허공에 쌓인다. 그것이 새길이 될거야, 너의 독백이 묵묵히 노을 속으로 스며든다.  


* 보들레르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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