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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Aug 26. 2022

익숙한 벗들과 누린 낯선 포항 여행

낯익은 친구들이 타지에서 만든 친숙한 따스함

4살부터 안 죽마고우, 대학교 때 알게 된 친구, 이십 대 중반에 안 친구들 모두 같은 종교를 매개로 이십 대 후반에 우연하게 친해져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됐다. 행선지는 그중 한 명이 이직 후 자리를 잡은 포항이었다. 그 친구는 작년에 결혼까지 해 한번은 가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갈 수 있어 감사하다. 안양에서 총 네 명의 포항 원정대가 출발했다.

총 4시간 반 정도 걸려 포항에 도착했다. 왠지 평소보다 성급하게 느껴지는 운전자들을 뒤로한 채 죽도시장 인근에 주차하고 포항 부부(?)를 만났다. 낯선 곳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됐다. 시장은 널찍하고 깔끔하면서도 정겨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대게회 거리도 따로 있다. 그 유명한 포항 물회를 시작으로 로컬 여행이 시작됐다.

포항운하의 전경은 감탄을 자아냈다. 날이 무더웠지만 맑은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지는 물줄기와 시장이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했다. 밤에 오면 야경이 다르게 아름다울 것 같다. 후식을 먹으러 시내를 떠나 30분 정도 이동하며 마주하는 해안 도로와 중공업 시설들은 이곳이 포항임을 깨닫게 한다.

오도1리 간이해수욕장에서는 오랜만에 해수욕을 즐겼다. 그렇게 크지 않은 해변에서 튜브, 물안경으로 2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정말 즐겁게 놀았다. 제발 쓰레기를 가지고 가라는 이장님의 반복적인 방송은 안타까우면서도 정이 느껴진다. 사용 가능한 공영 샤워장이 없어 바닷가 유료 샤워장에서 인당 3천 원을 내고 씻었다. 반은 개방된 천막 아래 다소 열악하게 씻는 것조차 재미로 느껴진다. 아주 어릴 적 친구와 가족끼리, 교회에서 함께 갔던 여행들도 떠올랐다. 해가 저물 즈음 적해진 바다는 또 다르게 아름답다. 살짝 어두워진 하늘과 수평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밤의 송도해수욕장은 현지인들이 노상에서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친근했다. 동시에 왠지 대만, 동남아 등지의 해변이 떠오르며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여러 식당 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치킨이 특별하게 양이 많거나 맛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제철소 인근 바닷가를 보며 즐기는 치킨과 탄산음료가 운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해안을 따라 걸으며 마주하는 여신상, 제철소 등이 이곳을 이해하는 오브제로 다가와 지나친다. 마침내 다다른 송도워터폴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닷가는 참 아름다웠다. 모르긴 몰라도 이 바다는 내가 미처 모르는 많은 희로애락을 모른 척 기억하고 있겠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이곳을 친구들과 향유한다.

이튿날 해돋이를 보러 혼자 출발했다. 얼핏 봐도 흐린 하늘이 왠지 슬픈 결말을 예상하게 했지만 해무인지 그냥 운무인지 안개가 상당한 산길과 해안 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해가 뜨지 않은 외진 동네를 혼자 지나치니 조금 무서우면서도 홀로 멀리 떠나온 느낌이다. 내심 여행 속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라 달떴다. 끝끝내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에 도착했다. 날이 흐렸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 안에는 새천년기념관, 상생의 손 그리고 수많은 갈매기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 바다와 육지에 각각 설치되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손, 일명 상생의 손은 실제로 보니 반갑고 신기했다. 바닷가에 있는 손은 갈매기들의 쉼터가 되었는데 처음엔 새조차 조형물의 일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해 오름은 끝끝내 볼 수 없었다.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과 그래도 제시간에 왔다는 후련함이 공존하는 양가적인 마음으로 흐린 동해 바다를 거닐었다. 사실 오늘도 해는 떴다. 다만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해가 뜨고 친구들이 깬 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가 근처여서 들렀다. 날이 워낙 무더워 다들 금방 절었다. 거리는 크게 볼 건 없었으나 골목과 동네가 아기자기해 좋았다.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하는 관광 자원이기에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골목이 간직한 근대 역사를 관광 자원으로 승화해 보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더 기억하길 바란다.  

여느 여행이 그렇듯 금방 하루를 보내고, 밤바다를 보기 위해 영일대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사람과 차가 엄청 많아 놀랐는데 알고 보니 휴가철과 더불어 지역 내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어제저녁을 먹었던 송도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곳이라 역시나 저 멀리 포스코 제철소가 보인다. 포항의 모든 길은 포스코로 통하는 느낌이다. 지나가다 유독 조명이 화려하고 인파가 북적이는 곳이 있었다. 미처 몰랐던 포항 벤토나이트 축제 무대였다. 떡돌이라고도 불리는 벤토나이트란 광물이 포항에서 많이 난다고 한다. 마침 초청 가수 딘딘 님이 공연 중이라 생각지 못한 공연을 즐겼다.

한여름 밤의 힙합을 즐기고 난 뒤 마지막으로 영일교를 지나 영일대 해상누각에 올랐다.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는 야경도 아름다웠지만 왠지 맑은 하늘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이번 여행의 끝이 벌써부터 아쉽게 느껴진다. 그만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겸허히 돌아서 본다.

마지막 날, 숙소 바로 앞 도구해수욕장에서의 산책으로 사실상 여행을 마무리했다. 제철소가 보이는 바닷가는 아름다웠지만 생각보다 좀 어수선했다. 갈매기가 많았고 바로 옆 해병대 상륙훈련장에서 울려 퍼지는 씩씩한 함성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좋았던 여정을 홀로 뒤돌아보며 윤종신 님의 바다 이야기를 들었다. 짐작만 했거나 미처 몰랐던 여러 어려움들을 나누며 서로 응원을 전했던 따뜻한 시간이었다. 교회 친구들을 만나면 유독 착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스스로 그만한 친구와 그만큼 신실한 신자는 못된다는 걸 알지만 그렇기에 더 감사하다. 먼 도시에 터를 잡고 가정을 꾸린 친구를 만나러 포항에 다녀오며 타지에서 값진 싹을 틔우는 부부와 무해한 벗님들 덕에 참 은혜로운 주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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