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쿨수 Jun 15. 2022

옥천 곳곳에 반짝이던 윤슬 같은 시어들

정지용 시인의 시 세계를 좇으며 누린 옥천 우정 여행

어쩌다 보니 또 한 번 충청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가 자란 동네를 함께 지키는 고향 친구와 만나 다른 도시에 터를 잡은 친구를 만나러 향했다. 고맙게도 친구가 차와 운전을 지원해 줬다. 어디 갈 때 선택지에 각자의 차가 추가된 게 아직도 조금 어색하다. 나이가 들며 잃어버린 것들도 있지만 분명 얻는 것들도 많다. 대전에서 완전체를 이룬 뒤 옥천으로 향했다. 한 번도 안 가본 곳인 줄 알았는데 왠지 뒤늦게 낯익어 기억을 되짚어 보니 무려 2013년에 대학교 도서관의 독서여행으로 다녀왔었다. 오랜만에 그 시절의 사람들과 나를 추억하며 옥천 명소 중 하나인 옥천성당에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공사 중이었다. 시작부터 시트콤 같다며 함께 웃었다.


1. 정지용문학관과 정지용 생가

가장 먼저 정지용문학관과 정지용 생가에 먼저 들렀다. 지드래곤(?) 선생님의 시 세계를 다시 헤아리고 9년이란 세월을 거슬러 지나간 시간을 마주했다. 돌이켜 보면 중앙도서관은 내 대학생활의 큰 축 중 하나였다. 많은 것들을 누리고 배우게 해 주신 선생님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호수, 향수, 고향은 아마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명시일 것이다. 호수 주민이자 그리움 마니아(?)로서 호수라는 시는 정말 대단하다. 가끔 홀로 호숫가를 걸으며 떠오르는 시구다.

호수만큼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봐도 떠오르는 그리움.

시인의 삶의 궤적을 따르다 그의 세례명이 프란시스코인 걸 알게 됐다. 나는 개신교 교회를 다니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상징을 존경한다. 교회에선 별도의 세례명이 없지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의 세례명은 프란치스코라고 말하기도 할 정도로 추앙한다. 뜻밖의 공통점이 외람된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문학관에서 시인의 삶의 궤적을 좇은 뒤, 바로 옆에 위치한 생가를 둘러봤다. 복원된 건물이긴 했지만 목가적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2. 부소담악

부소담악은 독서 여행 때도 왔던 곳인데 예전에 비해 차도가 많이 정돈된 느낌이었다. 날이 더웠지만 힘내어 추소정과 구정자까지 걷고 왔다. 마을 앞 물 위에 떠있는 산이라는 이름처럼 병풍 같은 지형이 독특했다. 반대편 혹은 다른 곳에서 봐야 암봉이 감싸는 듯한 절경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가봤으니 후회는 없다.

걸은 뒤 느낌적인 느낌으로 금강 물줄기를 따라 드라이브했는데 아프리카 출장을 떠올리게 하는 오프로드를 만났다. 운전자에게 미안하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진 길에서의 색다른 경험이 즐거웠다.

옥천과 르완다 사이, 옥완다(?)


3. 대청호 황새바위 전망대

어느덧 대청호 인근에 이르렀다. 유명한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을 지나 황새바위 전망대에 갔는데 그 밑 호숫가가 너무 곱고 평화로웠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우리와 호수만 있는 느낌이 깊은 여운을 주었다.


짧은 하루를 길게 누리고 친구의 폭풍 운전으로 집에 돌아왔다. 운전하느라 고생했던 친구, 대전 인근의 아름다움을 많이 알게 해 준 친구 모두 고마웠다. 마음에 여유가 없던 시절을 지나 흔한 멀어짐을 딛고 가까이 머물러준 벗들이 참 귀하다. 우리 우정의 형태와 거리는 때에 따라 바뀌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내 삶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부상의 회복을 핑계로 학습된 무기력이 나태로 이어지던 시기에 대학 시절 독서 여행을 했던 고장을 다시 찾아 시인의 길을 좇으며 각오를 바로잡았다. 곳곳에 넘치는 고운 시어들을 읊조리며 우정을 나눈 하루. 여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천 자전거길 위에서 찾은 삶의 의미와 고향 친구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