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쿨수 Aug 28. 2022

#31 2022.08.11

붕괴된 길 위에서 떠올린 헤어질 결심

예상치 못한 폭우가 한반도를 덮쳤다. 나는 탄력적인 근무 제도 덕에 별일 없었지만 곳곳에서 안타까운 피해 소식이 들려온다. 비가 그친 틈을 타 호수로 나섰다. 가는 길이 많이 망가지고 차단되어 꽤나 빙 돌아 호숫가에 이르렀다. 이렇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건축물들이 붕괴되었다. 왠지 자연의 위엄과 생명력이 느껴져 겸허해졌다. 비약일지 모르나 인류가 열심히 일궈 온 많은 것들은 사실 위태로울지 모른다. 알고 보면 대부분 아무리 공을 들여도 뜻하지 않은 무언가로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한창 아프리카로 출장을 다니던 시절에 어렵지 않게 기후난민을 비롯해 기상 이변을 증언하는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채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달라진 날씨로 잃은 어르신을 직접 뵙기도 했다. 이젠 멀리 가지 않아도 한 세대 내에서 기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염려스럽다. 당분간 여러 불편이 수반되겠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은 지구와 미래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익숙한 편의로부터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폭우로 인한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기억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남았다. 길이 없어 호수를 반도 돌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부슬비가 내렸다. 우산은 있었지만 그조차 사치로 느껴져 그냥 맞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30 2022.08.0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