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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Sep 13. 2022

#35 2022.09.10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19월이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태풍 힌남노로 포항을 비롯해 많은 곳에 피해가 컸다.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추석을 맞아 노인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와 추모공원에 모신 할아버지를 각각 뵙고 왔다. 요양원에서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비접촉 면회만 가능했다. 그새 또 기력이 눈에 띄게 쇠한 할머니는 오늘따라 정신이 또렷하지 않으셨다. 분명 눈앞에 계신데 목소리가 닿기에 너무 아득한 곳에 계신 느낌이었다.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가 말한 것처럼 나의 젊은이 노력으로 받은 상이 아니고, 또 누군가의 늙음이 벌은 아니다. 나 역시 지금도 늙고 있으며 죽음 앞에 모든 삶이 공평하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의 명백한 노화는 서글프고 속상하다. 


무거웠던 낮을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들과 마실을 나섰다. 백 년 만에 가장 둥근 보름달이 뜬다더니 날씨는 좀 흐렸지만 확실히 둥글둥글하다. 유독 밝게 느껴지는 달빛 아래 오랜만에 동네에서 호수로 바로 이어지는 경로가 열려 가봤는데 여전히 피해가 심했다. 오늘만큼은 수해로 보다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정을 비롯해 모든 집안에 달무리의 따스함이 전해지길 바라본다.

낮에는 아직 여름이 남았는데 해가 지면 가을이 완연하다. 하루 속에도 이렇게 여러 계절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다원적으로 내포된다. 맛깔스럽게 선선한 공기를 맛보며 함께 걸을 수 있어 행복했다. 몰랐는데 완전히 끊어졌던 길이 다시 이어져 있었다. 어쩌다 보니 호수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예상치 못한 단절과 연결이 반복되며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게 인생과 비슷하다. 주로 고독을 곱씹던 길을 명절 덕에 참 특별하게 누렸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참 소중하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값진 것들을 나누는 것보다 큰 행복은 드물다. 한 생애가 고해의 역사일지언정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길 바랄 수 있는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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