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니보틀x연봉인상 연탄 봉사 참여 후기
우연히 최애 크리에이터인 빠니보틀 님과 함께 봉사를 하게 됐다. 봉사와 일종의 팬미팅을 겸한 의미 있는 행사였는데 운 좋게 이직 3주년이라는 개인적인 기념일과 겹쳐 괜히 더 뿌듯했다. 이른 아침, 집결지인 국민대학교 학군단으로 향했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의 지배자 겸 개척자이자 제일 좋아하는 유튜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과 홀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이 동시에 느껴졌다. 도착하니 누가 봐도 오늘 함께할 사람들이 어색하게 무리 지어 있었다. 연탄봉사 특성상 대부분 어두운 옷을 입고 오셔 더 눈에 띄었다. 혼자 온 사람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번 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한 단체는 <연봉인상>이라는 MZ세대 봉사단이었다. '연마다 봉사를 늘린다'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으로 다양한 정기·비정기 봉사를 진행하고 계셨다. 젊은 피로 뭉친 단체답게 인플루언서 및 개인의 SNS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키우고 널리 퍼뜨리고자 고민하고 애쓰는 게 느껴졌다. 사진도 멋지게 찍어주시는데 이 포스팅에서 두드러지게 퀄리티가 높은 이미지는 봉사를 마치고 전달받은 것들이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구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기에 대견하고 존경스러웠다. 연봉인상의 안내와 기념 스티커를 받으며 시작부터 많은 곳에 묻어나는 세심한 배려를 느꼈다. 다만 둥근 안경테를 낀 캐릭터는 예전 섬네일이고 지금 섬네일은 각진 안경테를 쓰고 있다. 크게 상관은 없으나 그걸 알아보는 게 스스로 신기했다. 아침으로는 빠니보틀 님이 손수 챙겨주신 김밥을 먹었다. 어쩌면 꽤 괜찮은 현생일지도 모르겠다...*
봉사자들이 거의 다 모인 뒤, 봉사를 주관하는 또 다른 단체인 <사랑의연탄> 담당자들로부터 간단한 안내를 추가로 듣다가 갑자기 제일 고된 일이라며 지게를 질 사람 4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하셨다. 말씀을 듣고 조금 우물쭈물하다 마음속 오래된 무언가가 발동해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뒤늦게 깨닫는 만용의 퍼스트 펭귄이 앞으로 가는 중에 곧이어 빠니보틀 님이 자원하셨고 내가 단상에 도착했을 땐 그 사이 4명이 더 나오셔 총 6명의 지게 팀이 구성됐다. 습관처럼 나선 나와 다르게 고된 일을 솔선해 자처하는 모습이 새로이 멋있었다. 더불어 다른 분들에게 끼치는 파급 효과를 보며 이게 인플루언서고 선한 영향력이구나 새삼 실감했다. 사실 나를 비롯해 많은 봉사자가 오늘의 재능 나눔을 결심하게 된 것도 그 힘 덕이다.
그렇게 지게꾼이 되어 상대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세 가구에 배송을 시작했다. 연탄 봉사는 대학교 1학년 겨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었는데 무려 13년 만에 다시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연탄을 나르기엔 날이 조금 더웠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봉사의 맛이 달달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느끼는 안온한 연대감, 동네 어르신들과 주고받는 살가운 인사는 여전히 뜨끈하고 든든했다. 오가며 마주하는 내 아이돌과 나누는 안부, 다른 팬들과 주고받는 실없는 농담 속 응원 같은 것들조차 모두 익숙한 기쁨으로 이어졌다. 팬미팅 겸 봉사에 와 뜬금없이 청춘기의 거대한 추억과 마주했다. 한번은 뵙고 싶던 귀인과 내심 그리웠던 시절이 맞닿아 더욱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0시 반쯤 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약 2시간 동안 70여 명의 봉사자가 3천 장의 연탄을 여러 가정에 전달했다. 연탄은 미니쉬 치과에서 후원해 주셨다고 한다. 많은 분들과 젊은 단체에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 주고 계신 것 같아 고마웠다. 비탈진 길은 내가 오가기에도 가팔랐다. 특히 어르신들에게 버겁거나 위험하지 않을까 염려도 됐지만 외람된 걱정이란 걸 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짐작해 판단할 권리는 없다. 그저 연탄에 담긴 바람처럼 서로를 위하는 온기를 더 많이 나누고 사회적 자본을 많이 쌓는 게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길 중 하나라고 믿을 뿐이다.
세 집 중 두 집을 마치곤 피로로 머리가 조금 띵했다. 하지만 때로 피곤은 목적지가 머지않았다는 반증이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비타민 음료 한 잔과 빠니보틀 님이 챙겨 주셨다는 음료가 걸음을 북돋았다. 마지막 집에선 정든(?)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연탄 쌓기로 보직을 변경했다. 나름 일복의 아이콘답게 급작스레 지게 팀 외에도 모든 봉사자가 연탄을 함께 옮겨 주셔 쌓기 난이도가 많이 올라갔다. 정신없이 쌓아 올리다 보니 금세 할당량을 모두 채우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차린 상에 숟가락만 얹고 느끼는 보람이 마음을 넉넉하게 했다. 그 와중에 체력보다 고됐는지 뜬금없이 코피가 살짝 터져 민망했다.
봉사를 마치고 마무리 멘트를 듣는 도중 최애의 카메라에 스쳐 담기는 호사도 누렸다. 이 하루에 제일 많이 한 생각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다. 때로 이렇게 미처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도 있을 테니...* 연휴의 첫날임에도 기꺼이 뜻을 모은 청년 봉사 및 비영리 단체 분들과 선한 팬심을 중심으로 뭉친 봉사자들도 전부 크나큰 의미로 와닿았다. 봉사를 매개로 함께한 모든 사람 덕분에 무언가 나눌수록 오히려 채워지는 역설적인 나눔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게를 주차장에 가져다 두고 나니 이제야 다시 주변이 보였다. '천천히 세계여행 앤젤리나_Angelina_lee'라는 여행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신 앤젤리나 님을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고된 봉사 뒤에도 밝게 대해 주셔 고마웠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앞서 사랑의연탄 측에서 연탄 키링을 챙겨주셨는데 나는 지게를 챙기다 기념품의 존재를 깜빡했단 걸 깨달았다. 반나절만에 지게밖에 모르는 바보가 된 것일까?
함께 식사를 한 분들 모두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공통된 취향과 주제로 왠지 편안했다. 더불어 최애가 쏜 아이스크림과 고기로 원기를 회복하며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분명 그 누구보다 지쳤을 텐데 함께 봉사한 분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주는 빠니보틀 님의 친절함에 팬심이 더 깊어졌다. 사인을 받은 명함은 사적인 보물로 길이길이 간직할 예정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왔다. 이미 너무 많은 걸 받았음에도 아쉬웠다. 내 생애 덕질이라고는 십 대의 축구, 이십 대의 봉사 정도인 것 같은데 이번에 한 사람에 대한 덕심을 크게 키워 왔다. 막연하게 좋아하던 유튜버는 생각 이상으로 따뜻하고 솔직한, 그야말로 좋은 사람이었다. 박재한이라는 인물의 실재와 함께한 시간이 꿈을 꾼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값졌다. 들뜬 마음에 혹시 실수를 하진 않았나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단 짧게나마 그의 여정에 동행할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