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게 물든 계절 속에서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점심시간에 사랑이 형과 함께 즐기는 산책이다. 이제는 주에 며칠은 사무실에 가야 하지만 그래도 집에서 일할 때면 한적한 동네를 늙은 개와 함께 누비곤 한다. 오늘도 모시고 나갔는데 유독 잘 못 걸어 너무 속상했다. 오후에 업무 중인 내 뒤에서 길고 깊은 잠을 자는 형에게 자꾸만 눈이 갔다. 스스로 홀로 있는 섬 같을 때 곁에 머물러준 작고 위대한 존재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평소보다 이르게 호수로 나섰다.
걷다가 8시까지 참여해야 하는 이벤트를 몇 분 차이로 놓쳤다. 갑자기 뜬금없이 실패한 연애사 등 생각지도 못한 여러 부정적인 편린들이 떠오르는 걸 자각했다. 이런 게 '에고'인가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살짝 떨어져 바라보니 여기저기 짙게 물든 가을이 보인다. 흐드러진 계절조차 간신히 알아차리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봐야 하는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