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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Jan 29. 2023

일본 여행 2일 차(4)_히터 같던 기후 현 히다 지방

날이 흐려도 마음은 맑았던 하루의 끝

다시 돌아온 다카야마는 흐린 하늘 아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인데 이미 음산했다.

다카야마에도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된 명소가 있다. 상대적으로 많아진 차들에 적응하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걸었다. '히에 신사'는 여자 주인공 미츠하가 다음 생에는 도쿄의 훈남 되게 해 달라며 소리 지르는 장면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미츠하 신사라는 별칭도 생겼다는데 내가 갔을 땐 너무 깜깜해 무서웠다. 시내에서 은근히 멀어 도보로 30분 정도 걸린다. 성지 순례가 뜻밖의 공포 체험으로 끝났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이조차 나름의 추억이 된다.

다시 밤거리를 걸었다. 구글 지도가 알려준 길이 외지고 차들이 가깝게 달려 로드킬의 위협을 오랜만에 느꼈다. 낯익은 후루이 마치나미에 이르러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저녁으로 히다규를 먹고 싶어 쿄야라는 식당에 갔다. 히다규, 고베규, 마츠자카큐를 일본 3대 명품 쇠고기로 꼽는다고 한다. 히다규 화로구이와 호바미소 세트에 생맥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호바미소는 다카야마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후박나무 잎 위에 고기, 된장, 각종 야채를 올려 구운 요리였다. 겉모습은 된장 삼겹살과 비슷했고 맛은 강된장을 떠올리게 했다. 단출한 듯 나름 비싸고 고급진 식사였다. 혼자 와 미니 화로에 먹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싱싱한 소고기와 적당한 밑반찬이 양도 맛도 만족스러웠다. 모든 그릇을 싹싹 비웠다. 굽는 야채 중에 호박이 있어 점원 분께 오늘 먹는 거 아니냐고 괜히 아는 척하니 '아아 도지~'하며 웃으셨다. 이어 다른 분이 갑자기 이서진 씨가 요리를 하는 버라이어티를 보셨다고 하셔 조만간 멕시코에서 촬영한 비슷한 방송이 시작될 거라고 알려 드렸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해외에 나가면 너스레가 늘어난다. 나중에 주방에 계시던 남자 사장님까지 나오셔 스몰 토크를 시작하셨다. 인사동 좋아하신대서 나는 다카야마가 좋다고 하고, 월드컵에서 한국과 손흥민 선수 칭찬하셔 나도 일본의 선전과 미토마를 칭찬했다. 훈훈한 자강두천(?) 끝에 씩 웃으시며 따뜻한 녹차를 주셨다. 왠지 오늘 점심과 저녁으로 그동안 잃었던 인류애를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뜨끈하고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마주한 밤거리가 아늑하다. 머무른지 얼마나 됐다고 이 동네가 그새 낯이 익었다. 미처 모르던 사람이든 고장이든 정드는 건 순식간이다.

데일리 야마자키라는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서 숙소에 오니 7시밖에 안 됐다. 꽤 긴 하루였고 더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일찍 들어왔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다시 나가기엔 피곤해 푸딩이랑 우유를 시작으로 과자까지 먹었다. 일본 편의점은 우리나라와 유사성과 차별성이 고루 있어 그런 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반신욕과 녹차의 조합에 감탄한 뒤, 평소 잘 안 마시던 맥주 한 캔으로 값진 하루를 개운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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