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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Apr 11. 2022

#13 2022.04.04

가족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로 시작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많은 비극이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어느덧 또 악명 높은 사월이 됐다. 많은 순간을 노래로 기억하는 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잔인한 사월'을 떠올리곤 한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 개월 새 조금 버거운 일들이 있어 이때에 약간의 인정을 바랐다. 기대와는 다르게 월초부터 사적인 아킬레스건을 할퀴는 일이 생겼고 아물던 상처는 덧나 더 큰 반동으로 돌아왔다.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은 아니지만 어쩌다 파고든 마음속 내상은 참으로 다스리기 어렵다. 복받치는 우울감으로 괜히 힘을 주는 가족들의 힘을 빼는 것만 같아 도망치듯 호수로 향했다. 

살다 보면 주고받게 되는 아픔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다가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유별난 일이 일어났을까 자책하며 오락가락했다. 개인화와 일반화는 모두 자존감에 있어 양날의 검이다. 스스로 지키기 위해 나름의 방식을 체득했다고 자부할 만하면 삶은 한없는 겸허로 다시 내몰곤 했다. 눈물을 머금은 마음만은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은 아킬레우스에 필적했으나, 그와 달리 건강한 두 다리로 호수 둘레길을 내달렸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를 듣다 '걱정 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이라는 가사에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괜찮은 척하며 위로가 간절했던 하루를 통해, 간과했을 뿐 이미 위로가 되는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한동안 더 슬프거나 외로울지 모르지만 앞서 느낀 괜찮음이 도움이 되겠지. 어쩌면 이런 심적인 궁상은 청춘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일지 모른다. 사실 스스로 지은 죄는 없는 악명 높은 넷째 달의 억울함을 뒤늦게 기리며, 2022년 4월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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