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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Apr 18. 2022

#14 2022.04.11

봄과 호수의 일

기습적으로 도졌던 우울감을 생각보다 빠르게 떨쳐냈다. 삿된 마음으로 스스로 옥죄는 건 나름의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사실 부질없을 때가 많다. 조금씩이나마 뭣이 중한지 깨닫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반팔만 입고 나선 하늘엔 반원에 가까운 달이 떠 있었다. 수없이 차고 기우는 달과 속절없이 돌아오는 계절의 묵묵함이 일렁이는 삶에 위로가 된다.

얼마 전 읽은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이란 소설에는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은 호수와 같아"라는 구절이 있었다. 호수에 대한 애정으로 고른 책에서 마주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꽁꽁 얼어붙던 겨울을 보내며 왠지 나와 봄은 무관한 것 같았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침내 호숫가도 봄으로 가득 찼다. 둘레길을 둘러싼 파릇파릇 새싹과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소리 높여 봄철을 찬미하는 것만 같다. 이제는 감히 부정할 수 없이 완연한 봄이다. 늦게나마 찾아온 온기가 내심 반갑다. 앞으로 한동안 상춘객들로 호수와의 독대는 더 어려워지겠지만 혼자만의 애틋함은 더 깊어질 걸 안다. 짧은 봄날을 부지런히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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