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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Apr 29. 2022

#16 2022.04.26

조연과 주연 사이

타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조연을 맡다 보면 내 인생에서조차 주연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아진다. 마음대로 되는 게 딱히 없는 시기를 보내며 조금은 특별할 줄 알았던 나의 생애가 얼마나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지 깨달았다. 자기 비하나 연민보다는 서글픈 메타 인지에 가깝달까. 한동안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럴 수 있지'보다 '어쩔 수 없지'가 입에 붙어 간다. 이 와중에 제대로 담에 결려 답답한 맘을 달래고 몸을 다지기 위해 나섰다. 봄바람이 무척 세찬 날이었다. 숨이 시원하면서도 은은하게 따뜻했다. 역동적으로 파도치는 호수는 내 마음 같아 묘하게 쓸쓸함을 덜어 주었다. 참개구리의 울음소리도 같이 울어주는 것만 같아 고마웠다. 엇갈림 덕분에 맞닿은 많은 것들에서 위로를 구했다.

바람이 치던 호수
져 버린 잎새

얼마 전엔 우연히 '겹벚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다른 벚나무보다 조금 늦게 피는 꽃이 가진 꽃말의 뜻풀이 중 하나는 "수줍음이 많아 이성의 인기는 그다지 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있군요"라고 한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면 상대방의 호의조차 상실하게 된다는 통계적인 일반화가 강해져 솔직하기는 점점 더 어렵고, 그럴 만한 마음도 잘 생기지 않는다. 그 어떤 감정도 살아감 그 자체보다 앞서진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목표다. 연애는 과정보단 결과로 판별되지만, 사랑은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루지 못한 사랑도 사랑이기에 비록 평생토록 상대가 없는 조연일지라도 스스로 주인공임을 새긴다. 많은 벚꽃이 지고 난 뒤에야 흐드러지게 피는 겹벚꽃처럼 나의 진심도 부디 제때 만발하기를 바란다.

새로 생긴 울타리
홀로 찾아온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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