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바다 6화

셀피 혁명: 얼굴은 주제가 아니라 UI가 됐다

by 이영남

조정하는 얼굴

조용한 카페 창가 자리.
커피잔 옆에 폰이 세워져 있다.
화면을 확인하고, 고개를 조금 기울인다.
표정을 바꾼다. 다시 확인한다.
셔터 소리는 나지 않는다.

몇 초 후, 화면 속 얼굴이 웃는다.
방금 전까지 조정되던 얼굴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자기 얼굴을 찍은 게 아니다.

자기 얼굴을 조정하고 있다.


그 기준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화면 너머 어딘 가에 있다.


인증샷과 셀피 사이

5화에서 인증샷을 이야기했다.

인증샷의 중심은 장소였다.

셀피의 중심은 얼굴이다.


정확히는 —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여기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표정은 설계가 됐다

얼굴은 원래 감정이 밖으로 나오는 통로였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찡그린다.

감정이 먼저고, 표정은 그 결과였다.


셀피에서는 순서가 바뀐다.

화면을 보며 표정을 만든다.

지금 기분과 상관없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정한다.

표정이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반응을 위한 설계가 된다.


버튼이 클릭을 유도하듯,

얼굴이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얼굴이 인터페이스가 됐다.



인플루언서가 만든 표준

이 설계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표정이 더 반응을 받는지,

어떤 각도가 더 예뻐 보이는지,

어떤 빛이 피부를 더 좋아 보이게 하는지 —

이미 누군가는 실험을 끝냈다.


그 결과는 화면 속에 쌓여 있다.

45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

턱을 살짝 당기는 포즈.

눈을 조금 더 크게 뜨는 표정.

이것들은 개성이 아니라 반복의 결과다.


모두가 자신을 표현하려 셔터를 누르지만,

결과물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자기표현이

자기 소거로 바뀌는 순간이다.



필터가 업데이트된다

여기에 필터가 더해진다.

처음엔 장난이었다.

지금은 보정이다.


AI는 피부를 매끄럽게 만들고,

눈을 조금 크게, 코를 조금 가늘게,

턱을 조금 더 갸름하게 만든다.

한 번의 터치로.

그리고 그 방향은 거의 같다.


수억 명의 얼굴이

같은 기준을 향해 조정된다.

스마트폰의 UI가 업데이트되면

모든 화면이 동시에 바뀌듯,

플랫폼의 기준이

얼굴을 동시에 바꾼다.



보정이 없던 얼굴들

가끔 오래된 필름 사진을 꺼내 본다.

카메라를 의식해 굳어버린 표정.

어색하고, 계산되지 않았고,

어딘가 완성되지 않은 얼굴들.

보정도 없고, 기준도 없다.


그런데 그 얼굴들에는

흉내 낼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불완전하지만 —

누군가의 것이라는 느낌.


얼굴은 감정이 밖으로 나오는 창이었다.

지금은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이 두 문장 사이 어딘가에

지금 우리의 얼굴이 있다.


카페 안에서 열 초 동안

자기 얼굴을 조정하던 그 장면이

그 사실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가끔 화면을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그 열 초 동안

나는 무엇을 조정하고 있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품위의 박물관, 런던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