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이드 투어가 무료?! (아님)

팁베이스 프리 워킹투어 上

by 승협

유럽은 넓고 그냥 한번 지나치는 것들에도 많은 역사가 담긴 공간들이 많다. 비록 완전 전문적인 가이드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이 지역에 대한 여러 썰을 듣는 재미있는 투어가 유럽에서는 성행 중이다.


프리 워킹 투어는 가이드와 함께 도시의 대략적인 곳들을 둘러보거나 세부적인 주제에 지식을 가진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 등 여러 상품이 존재한다. 물론 이름처럼 완전 무료는 아니고, 팁을 베이스로 운영되는 투어방식이다.


혼자 여행은 장점이 많지만 고독함이 은근히 몰려올 때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먼저 유럽을 돌아다닌 도전정신이 투철한 친구가 이번 주제인 '프리 워킹 투어'를 알려주었고, 이름과는 달리 탄탄한 구성으로 재미있게 들었다길래 나도 신청을 하게 되었다.


프리 워킹 투어는 20명 내외로 구성되어 가이드의 설명을 듣게 된다. 약 1~2시간 내외로 진행이 되며 한 세션당 10~20명과 함께하게 된다. 미국에서 관광온 돈 많은 노부부부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들었지만 돈은 없는 현지 학생까지 함께 하기에 다체롭고 생각보다 투어가 끝난 이후 팁에 대한 부담도 적은 편이었다.


내가 예약한 곳은 Sandermans Tour라는 곳으로, 유럽 곳곳에 이러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빨간 우산을 쓴 투어 직원과 접견 장소에서 모여 시작하며 투어 인원이 몰릴 경우 사전에 미리 팁을 지불한 인원들이 우선권을 가진다고 했지만, 투어를 신청하고서 이러한 경우로 신청이 무산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전문 전공을 한 가이드가 아니기에 디테일하고 사소한 곳에서 잘못된 정보를 종종 전달하기도 하며 평이 좋은 투어가이드를 고를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랜덤 배치라는 것이다. 다만 이 회사의 투어의 경우 가이드의 인사고과(?)를 구글 평점에서 언급된 것으로 모니터링하기에 나쁜 가이드를 만나는 경우의 수는 적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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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를린과 제3제국 (Berlin Third Reich Tour)

투어 시간 : 약 1시간

투어 코스 : 브라덴부르크 문/라이히스탁 -> 집시 추모비 -> 소련 승전기념비 -> 성소수자 추모비 -> 학살된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공간 (끝)

독일의 국명인 도이칠란트(Deutschland), 독일어(Deutsch)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에 걸맞게 과거부터 독일, 특히 베를린은 현대에 와서 돌아봐도 매우 개방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었고 현재 독일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가며 발전해 왔지만 이러한 독일에도 폐쇄적인 암흑기가 있었다.


제3제국(Drittes Reich)은 나치가 집권한 독일을 뜻하는 단어로, 나치 독일이 신성 로마 제국을 승계하는 위대한 어쩌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단어이다. 아무튼 베를린에는 당시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 투어는 이러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날 함께한 투어 가이드 Nir는 독일인과 결합하여 베를린에 살게 된 외국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역사에 흥미가 많았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직업으로 가지게 되었다고. 투어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시작하여 의회의사당, 공원에 있는 각종 전쟁 관련 상징물(소련 전쟁기념비, 집시 및 성소수자들을 위한 추모비 등)을 거쳐 유대인을 위한 추모공간에서 끝나게 된다.


브라덴부르크 문과 의회의사당 그리고 유대인을 위한 추모공간은 상징성으로 이미 알고 있었고 히스토리 또한 알고 있었지만, 나치 정권이 마찬가지로 탄압한 집시들과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치 정권은 사회의 악을 규정하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동유럽 출신, 집시 그리고 성소수자를 탄압했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사회 혼란의 원인이었을까? 일명 '사회 악'을 제거하고도 전쟁 말 노인들과 아이들까지 전선에 나와 제국의 총통을 위해 피를 흘렸던 것을 볼 때 혐오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투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0511_162926.jpg '총통'의 벙커가 있던 자리는 전쟁 이후 아파트의 주차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본 투어가 끝난 뒤, 기차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가이드에게 다른 명소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나 이전에 미국인 가족 관광객이 비슷한 질문을 했었고, 가이드가 즉석으로 (진짜) 무료 추가 투어로 몇몇 명소를 알려준다고 하여 어쩌다 보니 같이 추가 투어를 하게 되었다.


'총통의 벙커'는 유명한 2차 대전 영화에 나온 그 벙커가 있었던 자리이다. 히틀러가 사용한 벙커이기에 더럽게 튼튼하게 지은 탓에 여러 번 해체 시도가 있었지만 당시 동독 기술로는 완전 해체를 못하고 지금은 콘크리트를 부어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상 국가'를 꿈꾸며 전쟁을 지휘한 그의 공간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그가 끔찍하게 싫어하던 이들의 추모비들은 지금의 베를린의 상징이 되어버린 셈이다.

20240511_163644.jpg 현재는 독일 재무부로 사용되고 있는 데틀레프-로베더 하우스(Detlev-Rohwedder-Haus)

히틀러 못지않은 악행을 저지른 괴링의 '항공부' 건물 또한 안타까운 역사를 품고 있었다. 권위주의적이고 웅장한 이 건물은 당시 점령한 소련과 이후 동독 지도자들의 마음에도 쏙 들었는지 계속해서 정부 건물로 사용되었는데, 건물 옆쪽으로 가면 사회주의적인 느낌의 벽화가 있다.


노동자 계급이 주축이 되어 여러 계급이 화합되고, 가족의 가치를 중시한 벽화 앞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당시 평화로운 시위를 하던 시위대를 향하여 당국의 총알이 날아갔고, 높으신 분들이 아끼는 벽화에는 최대한 손상이 덜 가도록 사격이 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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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보다도 못한 동독의 노동자들의 외침은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당시의 참상은 작게나마 조성된 추모비와 보존된 벽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추가 투어의 막바지는 공포의 지형학(Topographie des Terrors)에서 마무리되었다. 양질의 투어를 선사해 준 우리의 가이드 Nir는 본인이 좋아서 추가 투어라며 동행한 미국인 가족이 건넨 추가 팁을 극구 사양했지만 미국인 가족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추가 팁은 가이드의 강아지 간식 비용으로 대타협을 보며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투어를 통해 프리 워킹투어에 매력에 빠졌고, 나는 총 세 번 정도 서로 다른 도시에서 참여를 했다. 물론 하편에서 언급하겠지만 가이드의 따라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다만 대부분의 가이드가 구글 평점으로 인사를 받기에 대부분은 좋은 가이드와 함께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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