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승부욕을 부르는 열등감 버리기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지선 씨는 영업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한다. 사교적인 성격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자신의 도움으로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일에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매출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전날 매출을 초조한 심정으로 확인해 본다. 지선 씨가 출근하면서부터 브랜드 매출이 상승하여 인정을 받고 있지만 기쁘지 않다. 경쟁사에 비교했을 때 실적의 격차가 있어서이다. 어느 순간부터 지선 씨에게 일 잘하는 기준은 지점의 경쟁사보다 영업실적이 높은 것이 되어 버렸다. 브랜드 매출이 올라도 경쟁사에 비해 낮은 날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타 지점 대비 실적이 낮아도 경쟁사보다 매출이 높으면 잘했다 여겨진다.
경쟁사 직원과 사이도 좋지 않다.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밉기까지 하다. 경쟁 브랜드를 이겨야겠다는 승부욕은 결국 “경쟁사만 이기면 돼”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경쟁사에 손님이 모이면 동료들은 지선 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선 씨의 하루 기분은 경쟁 브랜드의 영업실적이 결정했다.
타인보다 높은 성과를 내고 싶은 승부욕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승부욕이 없다면 의욕 없는 일상이 될 것이다. 적절한 승부욕은 열정적으로 일에 몰입하게 한다. 문제는 승부욕이 과했을 때의 일이다. 과도한 승부욕은 패배에 대한 불안감을 확대하고, 현명한 판단을 방해한다. 관심이 승리했을 때의 기쁨에 집중된다. 이기지 못했을 때의 스트레스로 긴장감은 커져 간다. 승부욕이 과해질수록 맹목적으로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 커져간다. 승부욕은 좋지만 결과가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성장에 목표를 두자. 상대를 이기는 것만이 승자는 아니다. 이기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실패할 수도 있다.
은반 위의 악녀로 불리는 토냐 하딩은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다. 그녀는 90년대 전미 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는 실력에 미모까지 겸비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토냐 하딩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는데 낸시 케리건 선수이다. 대중들은 투톱인 이들의 경기에 집중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토냐 하딩을 악녀로 기억한다. 사건의 발단은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경기에서였다.
올림픽 출전권을 두고 치러진 경기를 앞두고 훈련을 마친 낸시 케리건은 대기실로 가던 중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괴한은 낸시 케리건의 무릎을 가격했다. 이 사건으로 낸시 케리건은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한 경기에 불참하게 된다. 대중들은 누군가 고의적으로 선수의 다리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주일 후 범인이 잡히자 더 놀라운 사실이 공개된다. 낸시 케리건의 사고는 토냐 하딩의 사주를 받은 괴한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토냐 하딩의 행동을 비난했다. 그녀는 결국 피겨계를 떠나게 된다.
그대 중들의 관심이 라이벌 관계인 두 선수의 우승에 주목되었고, 그럴수록 그녀에게 승리에 대한 승부욕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토냐 하딩은 승리가 간절할수록 낸시 케리건만 없으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승리의 결과에만 주목한 관점이다. 상대를 이기고자 한다면 상대보다 더 많은 연습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자신의 성장이지만 토냐 하딩은 라이벌을 이기는 것에 집중했다. 목표가 ‘너만 이기면 돼’로 변질되었다. 결국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토냐 하딩은 승리를 원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기는 것이 목표여서는 안된다. 목표는 나의 성장이다. 상대를 이겼다고 안심하고 만족하지 말자. 승부욕은 건강한 관계에서는 서로의 실력이 향상되도록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상대를 이기는 것에 승부욕이 집중되면 더 이상 나의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상대를 이기는 것에 집중하는 과도한 승부욕의 원인으로는 열등감에 있다.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는 열등감이 과도한 승부욕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들러는 열등감은 인간의 발전동력이다 라고 표현한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과하지 않은 열등감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 어느 집이나 형제들을 보면 둘째가 첫째보다 성장이 빠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보다 잘하는 형을 보며 동생은 형보다 잘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
열등감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부족한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상대를 이기는 것에 집착한다. 상대를 이겨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에 집중하게 한다. 때로는 어차피 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자포자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열등감이 부정적인 결과를 약한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에 대해 열등감을 가졌지만 물리학에 있어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결국 열등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실패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라이벌을 이기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목표를 보다 더 높게 잡아 보자. 경쟁 상대는 나와 비슷한 수준의 라이벌이 아니다. 나의 경쟁상대는 바로 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경쟁하자. 그렇게 개인의 성장에 집중하다 보면 상대를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내공이 나에게 쌓여간다. 상대에 집중하여 스스로 좌절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말자.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기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자.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에서 토끼는 자신보다 달리기 실력이 뒤지는 거북이에게 경주를 제안한다. 거북이와의 경주는 객관적인 전력을 보았을 때 결과는 토끼의 승리가 예상된다. 토끼는 동등한 실력을 갖춘 무리가 아닌 약자인 거북이와의 경주를 선택했다. 어쩌면 토끼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무작정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면 이 경기를 통해 토끼는 성장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거북이를 이겼다고 해서 토끼가 잘 뛰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부족함은 덮어두고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부족하다 느낀다면 열등감을 가지고 이기려 들지 말자. 나에게 열등감을 주는 원인을 찾아보자. 그 원인을 인정한다면 의외로 해결할 방법들이 보인다. 당신이 토끼와 같은 입장이라면, 동료보다 달리기를 못하는 나를 인정하자. 그리고 객관적으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자.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자. 어제 보다 나아진 실력을 가진 나를 살펴보자. 그리고 나를 인정하자. 칭찬하자. 열등감이 원인이 되는 과도한 승부욕은 내려두자. 열등감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자.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니 열등감 따위는 가질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