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날을 가는 시간
갭이어(Gapyear)란 학업이나 업무를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면서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출처: 한국갭이어)을 말합니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 아일랜드의 전환학년(Gap Year)과 비슷한 제도인데 말 그대로 학교를 졸업하기 전 1년 동안(경우에 따라 2~3년) 학업을 중단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의 경우 자신이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학교를 찾아 1년 동안 기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지요. 이 쉼의 기간 동안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들을 알아갑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봉사활동을 떠날 수도 있지요. 말 그대로 1년 쉬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해보는 기간입니다.
덴마크나 아일랜드의 이런 제도들을 보면서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활성화되어있었더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어린 시기에 시간을 갖고 진로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으면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경쟁과 대입으로 중고등학교 학업에 치여 사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신관리에 수능공부로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수능공부를 하느라 정작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살고 싶은지가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교가 어디인지,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장은 무엇인지가 진로를 결정하는데 전부였습니다.
수능을 치고 나서 점수에 맞춰 대학교 원서를 내었습니다. 부모님은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고, 전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법대와 교대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단순하게 아이를 좋아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교대에 합격하고 교대를 4년 다녔습니다. 교생실습을 가면서 순간 회의감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나와는 맞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거든요. 아이들은 좋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되돌아가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참 젊은 20대 초반이었는데 말이죠. 지금 다니는 학교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고 싶다는 용기도 부족했어요. 되돌아보면 20대 선생님의 길이 맞나 고민을 하면서도 정작 나의 진로에 대해 크게 생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교대에 입학하는 순간 시야가 좁아지더군요. 일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여러 직업들을 알아보고 스펙을 쌓지만 교대는 들어가는 순간 선생님이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4년을 다니면서 당연히 임용을 치고 선생님이 되겠네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도 몰랐기에 그냥 이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 때라도 1년 정도 휴학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배우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빈둥대며 논 기억밖에 없습니다. 4학년 때는 임용공부를 했고요.
부모님께 1년 정도 휴학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나다운 삶이 아닌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게 효도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기에 1년 정도 나다움을 찾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고 하면 1년 논다고 생각을 하면서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반대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쟁과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사회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또래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앞서 나가는데 1년 쉰다고 하면 경쟁에 뒤쳐지는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요.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나무 베는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도끼를 가는데 45분을 쓰겠다.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가는 삶은 무뎌진 도끼로 나무를 한 시간 동안 베는 것과 같습니다. 쉼의 기간,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도끼의 날을 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수능에 임용고시, 그리고 직장에서도 앞만 보고 도끼날이 무뎌진 지도 모른 채 나무를 찍어대고 있었어요. 나무가 잘 베이지 않는다며 불평하면서요.
10대와 20대처럼 정말 온전히 나에게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니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어린 두 아이들을 기르는데 체력도 많이 필요하고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없지만, 휴직을 하는 기간 동안 나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도 직장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와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을 돌보느라 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긴 하지만 작은 시간이나마 쪼개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도 해보고, 평소 읽고 싶던 책도 읽어보고, 만들기, 나무 조각도 해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늦었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합니다. 사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는 말도 있듯이 좀 더 어렸을 때 깨달았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또 지금의 삶을 살 수 없을 테니까요. 지금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이제 불과 35%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남은 65%는 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그 삶의 길에 아내와 두 아이가 함께 하니 더 행복하겠지요.
나중에 두 아이들이 조금 커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1년 정도 온 가족이 쉼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1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계획을 세우고 정말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놀고 싶어요.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마음껏 보고,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추억들을 가득 채워주고 싶습니다. 그 1년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부모의 기대와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직업이 아닌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