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근처에서 따릉이를 빌려서, 크림치즈가 올라간 당근케이크가 있는 조금 멀리 있는 카페에 들어갑시다.
그동안 저는 '소확행', '욜로' 이런 말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소비로 자신을 위안하는 변명으로 들렸으니까요.
"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필요없어. 나는 '크고 확실한 행복'을 갖고 싶은데! "
수다를 떨때면 우스갯소리로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조각에 5800원. 이 한 조각 당근케이크로 너무나 행복해하는 저를 보고 말았습니다. 트레이에 올려진 음료와 크림치즈 당근케이크라니. 너무도 확실하고 소소하면서도 큰 행복입니다.
'~가 된다면 행복할텐데'와 소망을 구분하기
늘 많은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자전거를 장만하는 것, 내 방에도 희고 풍성한 호텔이불을 놓아보는 것, 언젠가 오븐이 딸린 집으로 가서 낮시간에 빵이나 과자를 굽는 일입니다. 내 작은 소망들을 생각하면 늘 행복하고, 충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늘 '~이 된다면 행복할텐데' 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정말로 많이 주의하고 있습니다. '~이 있으면, 행복할텐데' 라고 하지만 기실, '~가 없어서 지금은 불행해.' 라며 나를 초라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사실은 지난 날 동안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대학에 가면, 시험이 끝나면, 과외가 없으면, 졸업을 하면, 돈이 얼마가 있으면, 그가 나를 좋아하면, 이 일을 더 잘하면, 그렇게 되면 행복할텐데.
그런 생각은 이제 정말로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불행하다고 느낄 때 나를 돌아보면 늘 그 '현재 사실 반대 가정법'의 말투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남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것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소망인척 하고 있는 절망을 구분해내자 이제 나는 무척 자유로워졌습니다.
내려놓음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고, 시험은 떨어지고, 내가 나인 것이 수치스러울 때. 누구나 겪을만하지만 사실 막상 내가 겪으면 너무도 고통스러운 날들. 그랬던 날들을 지날 때 며칠 밤을 충분히 아파하고나서는 핸드폰에 이렇게 적기 시작했습니다.
'다 내려놓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하면 시험에는 꼭 붙어야 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반드시 언제 안에는 잘되어야 하고, 그가 나를 더 사랑해야 하며, 누구보다 잘나야한다는 모든 종류의 집착을 말입니다. 상황을 판단하는 것을 보류하고 나는 가만히 '내 할 것'들에 집중하기로 한 것입니다. 내려놓음이라는 말이 이토록 나를 차분하게 변하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내 불행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을 멈추자 내 머릿속은 심심해졌는지 내 눈에는 작은 것들이 들어왔습니다. 가만히 누워 방을 바라보는데 이집이 나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 내 방의 침대, 주방의 싱크대와 세탁기, 작은 식탁도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빵순이답게 우리집 옆에 작은 빵집의 맘모스빵이랑 아몬드 쿠키가 너무 맛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해졌던 것입니다.
더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이를 만나면, 때로 그게 나일지라도 다시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려놓으라'고. 사실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그저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계획해보자고. 집에만 가만히 있지말고 좀 나가서 바람좀 쐬면서 생각해보라고.
현실을 바라보면 도무지 버티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승자라고 말입니다. 그 회사에 합격하고 불행해진 사람보다는 떨어지고 행복한 사람이, 똑똑해서 피곤한 사람보다는 아이큐는 높지 않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어떤 큰 것을 가져야하고, 어떤 남자나 여자를 만나야하고, 어떤 시험에 합격해서 내가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큼직큼직한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맡겨버리고, 당근케이크를 먹고나서 오늘도 나의 작은 계획들, 그리고 이미 날 위해 존재하는 것에 집중해봅시다. 근거는 없지만 문제는 해결되고 있고 소망은 어떻게든 이루워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