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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un 02. 2021

다시 나를 믿고 한걸음을 내딛으며.

 카페 안에서  다른 테이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치 주위에 자기 이외의 사람은 없는 듯 언성을 높인다. 듣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내 귓가에 들려온다. 오늘은 아무래도 명희 씨 카페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어 가방을 챙겨 나왔다. 무던한 내 귀가 예민하게 구는  걸 보니 오늘 내 심기가 불편한가 보다.

 집 근처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벤치에 앉았다. 흐린 하늘이 비가 올 것처럼 물기를 머금고 있다. 날씨도 흐리고 시간도 오전이어서 그런지 오고 가는 사람도 없고 한적하니 혼자 봄이 깊은 풍경을 바라보기 좋은 시간이다. 요즘 마음이 이유 없이 시끄러워 밤마다 잠을 설치는데 그래도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게 유지해서 생활의 리듬을 크게 깨지 않으려 한다. 마음은 예민하고 정직하다. 한번 일상이 흐트러지면 금세 마음의 정원에 잡초가 자란다.

 후드득 비가 쏟아진다. 가방 안의 우산을 펼쳐 들고 비 내리는 봄 풍경을 만끽하며 길을 걷는다. 초록물이 짙게 드리운 잎새들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뭇잎들과 빗방울의 우아한 왈츠를 숨죽이며 바라본다. 계절의 여왕답게 고고한 자태로 스텝을 밟는다. 꿈결 같은 그 고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 불안했던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는다. 자연은 그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며칠째 어지러운 악몽에서 깨곤 한다. 누군가 정체 모를 사람에게 막다른 길까지 쫓기기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시간에 쫓겨 빈 답안지를 제출하는 상황에 가까스로 눈을 떠서 꿈이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그런 상황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어제는 꿈에서 아들을 잃어버리고 발을 동동거리며 사방으로 아들을 찾아 헤매다 깨었다. 등줄기와 목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은 조여왔다. 언제부턴지 나도 모르겠다. 다시 불안에 일상의 생활이 조금씩 잠식되가고 있다. 오랜 코로나 블루는 우울감을 넘어 절망과 암흑의 코로나 블랙으로 나도 모르게 젖어들고 있다. 앞날에 대한 끝없는 염려가 나를 에워싸 꿈속조차 질기게 나를 따라다녔고  잠들기 두려운 날들이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갔다.

 길고 지루한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의지와는 다르게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예전의 깊은 우울 속으로 빠질까 화들짝 놀라 마음을 추슬러 보지만 의지와는 달리 약해지는 마음은 무의식인 꿈에서조차 편한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의식과 무의식에 고여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다. 뭔가 나를 깨울 힘이 필요하다. 



 대기실 안에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석 달만의 방문이다. 10년째 다니는 정신과의 정기검진일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병원 진료시스템이지만 항상  대기 시간이 40분에서 한 시간은 기본이다. 대기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앉아 주위의 환자들을 둘러본다. 마스크 위로도 감출 수 없는 경직된 표정의 그들이 침묵하며 앉아 있다. 지난 10년간 좀 달라진 분위기라면 젊은 환자가 좀 많아지고 대기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 씁쓸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10년 전 동생의 손에 이끌려 처음 이곳에 왔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그 밑바닥엔 간절히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 여기까지 오기까지 수많은 고비들을 넘기고 이렇게 살아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수면 위로 불쑥 떠오른다. 기억을 떨쳐내려 고개를 젓는다. 파문이 일던 수면이 다시 고요하니 잔잔해진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대기실에서 진료실로 노크를 하고 들어선다. 친숙한 얼굴의 선생님이 나를 반긴다.

  우울증이 안정기로 접어든 것은 불과 1년 남짓이다. 지옥 같은 오르내림과 좌절을 수없이 반복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이제야 겨우 찾았는데,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예전의 절망의 그림자를 혼자  있을 때 문득문득 발견하고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까-솔직히 두렵고 무섭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 그림자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예상한 대로 담당 선생님은 약의 용량을 늘리자고 권유하신다.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불편하면 언제든지 검진일 전이라도 오셔야 돼요. " 하고 다짐하듯 걱정스러운 말투로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다시 하루만을 생각하고 하루만을 버티며 하루치씩 살아가야겠다. 힘들 때마다 내가 삶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 내일도, 한 달도 지나고 보면 잘 살아낸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는 악몽을 꾸고 싶지 않다. 다시 무너지고 싶지 않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다짐한다.

 어느새 내리던 비가 그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숨 막혔던 숱한 고비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두운 터널도 두려움을 참고 걸어가다 보면 결국은 터널 밖의 세상-빛의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를 믿고 싶다. 내 안의 수많은 나. 그 안의 강하고 질긴 나를 깨우려 한다.


 책상 서랍 안에 보물상자를 꺼내본다. 아들이 훈련소에서 내게 보낸 첫 편지, 조카들이 내 생일날 접어준 종이 접기와 카드,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주던 친구의 편지를 흐린 눈으로 펼쳐 보며 미소 짓는다. 잊고 있던 나를 향한 응원의 목소리들이 귓가에 울린다. 그 목소리가 나를 앞으로 가라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을 한다. 그 낮고 힘 있는 음성에 고개를 끄덕인다.


 

 대지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오늘도 무사히 저물어간다. 집 안을 환하게 밝히고 오늘도 수고하고 애쓴 내게 "사랑해. 고마워. "하며 어깨를 살포시 감싼다. 염려와 불안으로 시작된 하루가 다시 감사함으로 마무리된다. 낼 하루는 어떤 하루가 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약함 속의 강함이 나를 계속 삶의 여정을 이어 가라고. 그렇게 가라고 흔들어 깨울 것을 믿는다.

  고단한 눈을 감는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나는 내일 하루치의 삶만을 근심하며 또 감사로 살아갈 것이다. 하루살이의 삶. 매일을 살고. 매일을 죽으며 영원히 다시 태어나는 삶 속으로 나는 발걸음을 내딛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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